•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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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풍당당 자신만만
        위풍당당 자신만만 친구1. 친구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두 자식이 모두 현관에 나와 인사를 해야 신발 벗고 거실로 들어갔단다. 다만 샤워를 하는 사람은 예외였는데,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방에서 외출복을 벗지 않고 기다렸다가 인사를 받은 후 넥타이를 풀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꼰대 일짱’이라 불렀고 그 소문은 자식들 친구에게도 유명해져 집에 놀러 온 아들 친구들도 아버지께 먼저 인사를 하고 놀았다고 한다. 뼈대 있는 가문의 몇 대손으로서 가풍이란다. 자식들이 취직한 후에는 부모님께 봉급의 10%를 내놓도록 했다는 말에 같은 세대의 아버지로 살아온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가족 풍속도가 많이 바뀐 21세기에 이렇게 가부장적인(?) 삶이 그의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의아했다. 만약 눈치 빠르다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웠다면 강아지도 현관에 나와 인사를 했겠다 싶었다. 어느 날 만남에서 자식에게 받은 십일조로 점심을 산다 해서 맛있게 얻어먹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그가 요즈음은 자식들이 출근할 때 배웅을 해준다고 하니 큰 반전이다.  친구2. 노래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즐겨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노래는 음정과 박자가 영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음치다. 그의 18번 노래가 끝나면 친구들은 재미있어 박장대소하며 앙코르를 외치고, 그 친구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 노래를 선곡한다. 노래방을 끝낼 즘에 조용한 노래를 ‘손에 손잡고’ 합창을 했는데, 그 친구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그 친구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 본다. 일반적으로 음치는 자기가 음치라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본인이 부르는 노래가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자신 있게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남은 잘 알면서 가끔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노래가 끝나고 파할 무렵 한 친구가 그에게 ‘너 목청 엄청나게 크고 좋다. 그런데 혹시 너 노래를 부를 때 반주나 옆 사람 노랫소리를 듣냐?’라고 물으며, ‘합창할 때는 같이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 봐라’라고 했다. 노래는 잘 부르는 사람을 위한 것만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내 감정과 만족도 중요하지만, ‘함께 부르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라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합창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내 말만 들어달라고 목청 높이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옆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소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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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1-03

실시간 백운골에서 온 편지 기사

  • 가정의달 5월 - 어버이날을 보내며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 저녁 보건소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난 5월 2일 우리가족이 방문했던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니 거주지 보건소에서 검사받고 음성이 나올 때까지 격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로만 보던 일이 우리에게도 발생한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행사가 많은데 은근히 걱정됐다.   검사 결과 우리는 다행히 음성으로 판정되었지만, 어버이날 부모님과 자식 사이에 유리창으로 막혀있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하고 손도 잡아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진과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올해도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 이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긴 겨울을 보내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과 찬란한 신록이 아름다운 5월. 또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가족 간에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어 활기와 사랑이 넘치는 5월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은 젖 먹는 자기 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의 눈빛이라 한다, 이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당신은 누군데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엄마의 맘을 훔친다.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사랑은 흐른다.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끝없이 주는 사랑이 행복하다는 의미를,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에게 준 행복감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울 때는 삶이 바쁘고 힘들어 자식이 주는 행복감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기에, 손자를 보는 지금은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고 느낄 여유가 있어 더 예쁘게 생각되나 보다.   나이가 들면 어른들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고 흔히 말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성장하듯, 나이가 들수록 어르신들도 자식들의 따뜻한 눈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코로나가 극복되어 자손들의 재롱에 어버이들이 활짝 웃을 수 날이 빨리 또한 많기를 기대해 본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윤보영 님의 시 <어버이날>을 소개한다. 오늘 알았습니다 화분에 꽃을 보고  부모님 마음을 다시 알았습니다 비가 쏟아져도 물을 주지 않으면 처마 안 화분에 갈증이 일듯 가까이에 살아도 찾아가지 않으면 부모님은 늘 외롭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알았으니 먼저 연락하고  얼른 찾아가 뵈어야 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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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5-26
  • 주말 농장에 심은 소소한 행복
    올해 운 좋게 운북지역에 6평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인천공항뉴스에 난 주말농장 분양 기사를 보고 신청하였는데, 거의 90% 당첨되는 보물찾기나 행운권 추첨 등의 행사에서도 당첨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적적으로(?) 당첨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퇴직을 하면서 전원주택 혹은 귀촌 귀농을 꿈꿔왔지만, 생각뿐이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도 부족하고 여건도 마땅치 않아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주말농장에 도전했다.   영종도에 땅을 소유하고 계신 분들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 있는 농지에 농사짓기를 권유했지만, 농기구도 없고 큰 토지를 가꿀만한 힘도 없는 우리에게 주말농장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요 즐거움이다. 우리 부부 둘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이웃들과도 만날 때 새로운 대화의 소재가 생겼다.   아이들로부터 농작물 종목 추천을 받았는데 5살 손자는 자기가 딸기를 좋아한다고 딸기를 심자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세상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는 나와 관계없는 대화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신선한 대화 소재. 퇴비와 비료를 사서 밑거름을 하는 것은 힘이 들었지만 흥미로웠고, 그곳에 어떤 채소를 심을지 얘기하며 큰 농장주나 되는 것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날이 그날이고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삶에 이 자그마한 변화가 주는 소소한 행복. 행복은 어디에 도달했다고 주어지는 상장과 같은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많은 현대인은 돈과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그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한다. 돈과 명예도 물론 중요하지만 남과 비교하면서 경쟁적으로 달리다 보면, 상대적인 행복 박탈감으로 인해 달림을 멈출 수가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자동차처럼.  텃밭을 했던 분들이 하는 얘기가 텃밭에서도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서로 모종과 정보를 나누고 생산된 채소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좋은 관계. 행복에 또 하나의 커다란 조건인 사람과의 관계가 예외 없이 이곳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땅이 아니고 잠시 빌려서 한해 농작물을 가꾸는 것이기에 많은 소출이 목적이 아닌, 가꾸면서 즐겁고 또한 이웃과 소통하면서 잠시라도 웃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이 또한 행복이리라. 주말농장에 들어가는 비용이 사 먹는 비용보다 더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영종도에 사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내년에도 이런 행운과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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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4-28
  • 반려동물과 함께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세대에 살고 있지만, 도시의 삶은 소통의 부족으로 메말라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40-50년 전만 해도 이웃들과 서로 스스럼없이 왕래하고, 부족하지만 나누며 살았는데, 요즘은 부모·자식 간에도 만남이 쉽지 않고 네 것과 내 것을 나누는 시대가 됐다.  공 동주택 단지 안에 수많은 세대가 함께 살고 있지만, 현관문을 잠가 놓은 상태로 각기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 또한 비혼,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며 가족 구성원의 빈 곳을 반려동물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 간의 단절 때문일까? 요즈음은 산책로에서 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자주 반려견을 동반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개는 인간과 함께 오랜 세월 친근하게 지내고 있는 동물 중의 하나다. 처음에 우리는 이들을 ‘애완동물’이라 불렀다. 사전적으로 좋아해서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동물로 이해되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로 불리고 있는데, 사전에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로 정의되며 인식이 변화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동물들과 더불어 가족같이 살아가며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의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나라도 반려동물 1000만 시대 (2019년 통계: 반려견 598만, 반려묘 258만 등) 시대라 한다. 이처럼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와 반려동물 수가 증가함에 따라, 공동체 멤버로 살아가기 위해 규칙과 규범이 만들어지고 지켜주기가 요구되고 있다.  동물등록 및 안전관리 의무 준수가 중요해졌으며,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9월부터 반려견 등록 의무화가 시행하고, 등록하지 않을 때 과태료가 부과되며, 반려견과 함께 외출 시 목줄 길이 2m 및 공용 공간에서의 안전 의무수칙이 등이 포함된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최근 반려견과의 소통을 위해 목에 걸어 놓으면 짖는 소리를 분석해서 행복·슬픔·불안·분노·안정 5가지 감정으로 구분해서 알려주는데 정확도가 80%에 달한다는 기술 등 다양한 제품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 각자는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게 된다. 우리 모두 반려동물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웃·친지·동료들도 더욱 사랑함으로써  훈훈한 사회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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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4-14
  • 꼰대질
    [ 백운골에서 온 편지 ]   상쾌한 봄볕을 즐기며 씨사이드 파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60대 중후반의 아저씨가 젊은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자전거 도로에서 남들에게 방해되게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격하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저렇게 싸움하듯 험한 말로 야단치다가 봉변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는데, 다행히 학생들이 조용히 옆으로 비켜 일단락되었다.  알아듣게 타이르는 것이 좋을 듯한데, 다짜고짜 욕이 섞인 호통은 자기 화풀이로 보였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말이 ‘꼰대’였는데, 집에 와 사전을 찾아봤다. 꼰대질은 ‘명사인 꼰대에 '행위'를 뜻하는 접사인 '-질'을 붙여,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라떼는 말이야’와 ’갑질‘도 그와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갑질의 행태를 매스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비난과 훈계질이 도가 넘고 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젊은 담당 직원의 서비스가 약간은 미숙했지만 친절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종업원이 들어와 예약 시간이 끝나가니 대화를 마무리해 달라고 했다. 다른 예약 손님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예약했던 친구가 2시간으로 예약 했으니 확인해 보라고 종업원에게 말했다. 이때 옆에 있던 친구가 우리는 식사를 이미 끝냈고, 다른 예약 손님들이 기다린다니 다른 곳에 가서 커피 한잔하자고 제의했다. 그 친구의 말에 모두 동의해서 바로 일어나 나오면서 사장님에게 우리 테이블에 봉사했던 직원의 서비스가 참 좋았으니 꼭 칭찬해주라고 얘기도 덧붙였다. 업주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직원의 친절함도 칭찬하고 나오니 기분이 상할 일도 없어 유쾌한 시간을 끝까지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참 인색한 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가 불안하여 하루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따뜻한 격려는 못 할망정 ’꼰대질‘만이라도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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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4-07
  • 따뜻한 미담
    요즈음 지인들로부터 TV나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TV를 켜면 정치권의 대치 상황, 고위 공직자들의 일방통행적인 불통의 언행들이 답답해서 동물의 왕국이나 여행, 스포츠 프로그램을 본다고 한다. 지난주 오후 4시경 한 TV 프로그램에서 ‘치매에 걸린 80대 남편을 살해한 40대 아내’, ‘구미에서 3살 여자아이가 빈집에 방치된 채 숨진 사건’, ‘부인이 밥 안 차려 준다고 부인을 위협했다는 사건’을 분석 예측하며 신나게(?) 토론하는 것을 보다 못해 채널을 돌렸다. 사건의 보도는 흥미 유발만이 아닌, 사실 확인 및 이를 통한 재발 방지가 주목적이 아닐까? 사회의 어두운 면을 굳이 저렇게 많은 시간을 배정해야 할 만큼 프로그램 구성할 소재가 없었나 안타까웠다.  또 자주 듣는 얘기가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또는 감동적인 소식을 접하면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다.   얼마 전 서교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 코로나19로 인해 본인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조실부모한 형제들에게 베푼 온정의 이야기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치킨집 사장님의 친절에 감동한 많은 시민이 그를 응원하고, 온정을 받은 소년 가장은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갚고 싶다’고 전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인천에서도 쪽방촌 주민들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자’라는 마음으로 지난 2008년 처음 모금을 시작해 12년간 릴레이 기부 1천4백만 원을 했다고 한다. 본인들도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으며 사는 어려운 처지에, 더구나 코로나로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감동적이다.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어머니를 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열병으로 지적장애를 지닌 상황이었기에, 오닐은 아일랜드계 미국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장애가 있는 한국 여인을 입양하고 또 그의 아들을 끝까지 뒷바라지해 준 조부모의 사랑을 본인의 친자식도 힘겨워하는 요즈음에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되었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따뜻한 소식이 그립기에, 사나이가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냐는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소식을 더 자주 듣고 싶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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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3-24
  • 커피 한 모금의 행복
    <백운골에서 온 편지> 인천공항뉴스에서는 금호부터 격주로 ‘백운골에서 온 편지’ 칼럼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박승식님은 본지자문위원으로 현재 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박승식 이사장님은 영종의 자연환경이 좋아 2011년부터 백운산 자락 운남동에 거주하고 계시며 영종의 아름다움을 널리 소개하고 계십니다. ‘백운골에서 온 편지’는 자극적인 뉴스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속에서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전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커피 한 모금의 행복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건강검진을 미루다가 며칠 전 검진을 받았다. 병원에서 우편으로 사전 준비내용을 보내와 읽어보니, 검진 전날 아침 점심은 흰죽으로 먹고 그 후로는 금식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살도 빼고 장도 청결히 할 겸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저녁을 안 먹으려니 왜 이리 배가 고픈지 한 끼 굶는다는 것이 이리 어렵나 싶다. 마음이 심란해서 TV를 켰는데, 먹는 방송에 광고까지 온통 식욕을 자극한다. 그래 그까짓 것 ‘지금부터 두 끼만 잘 참자’하고 버텼다. 내일 검사가 끝나고 나면 무엇을 먹을지 먹고 싶은 리스트를 머릿속에 나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문제는 검사 당일 검사만 끝나면 저녁부터는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줄 알았는데, 검사 후 “위에서 조직검사를 했기에 유동식으로 시작하고 자극적인 음식과 카페인이 포함된 음식도 며칠간 피하라”고 한다. 점심에 야채죽을 먹는데 영 입맛이 나지 않았다.   김치 한쪽이 그립고, 젓갈도 먹고 싶었다. 입이 텁텁하니 커피 한잔 생각도 간절했다.다음날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유혹을 못 이겨, 커피 한 모금 입에 넣으니 그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행복은 큰 컵에 가득한 많은 양의 커피가 아닌 한 모금의 커피로도 충분했다.   외롭고 힘들 때 필요한 친구는 휴대전화에 입력된 많은 이름이 아니라, 언제라도 보고 싶을 때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소중한 것처럼.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평범한 일상의 생활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동안 너무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 속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시간과 돈만 허락한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발발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이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늘 더 큰 것,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는 어쩌면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 살아가는 영원한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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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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