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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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행복한 사람들을 상상해 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프로포즈를 하고 꽃다발을 건네는 총각! 밤새 꽃과 함께 건넬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을 밤새 연습했습니다. 수줍은 듯 붉은 볼에 꽃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떡이는 순간, 처녀 총각은 세상 다 얻은 것 같이 행복할 겁니다.  누구 이야기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합격자 명단에 오른 자신의 이름을 보고 있는 수험생의 얼굴에서도 행복이 그려집니다. 자신과 꼭 닮은 아기와 눈 맞추며 혼자 묻고 답하는 젊은 어머니의 미소도 행복합니다. 처음 마련한 내 집에서의 첫 밤도 세상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행복한 일들이 많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가졌을 때, 되었을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행복은 뭔가를 잃었을 때, 원대로 되지 못했을 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대 갈망의 존재입니다. 소유를 구하고, 관계를 구하고, 성공을 구하고, 그밖에 수많은 것을 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세상 무엇으로도 사람의 영혼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오직 존재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만으로 영혼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비록 얻지 못해도, 잃어버려도, 되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리에서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된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꿈에 그리던 가나안을 바라본 후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모세야 슬프냐?” “아닙니다.” “괴로우냐?” “아닙니다.” “분하냐?” “아닙니다.”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럼 왜 엎드려 있느냐?”  모세가 대답합니다. “무척 행복해서입니다.” “행복하다니?” “어느 누가 주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으며, 어느 누가 주께서 주신 반석의 샘물을 마셔보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했던 광야가 제게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그 인생은 만족이고 풍성입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가졌나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예수님과 함께할 때,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눈을 감고 즐겨 부르는 찬양을 다시금 불러 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저는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변찮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마음을 함께 하는 교우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행복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선포하는 구호가 있지요. “우짜든지 행복합시다!”. 이 말은 “우짜든지 예수 잘 믿읍시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그분을 떠난 우리는 빈털터리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 제가 먼저 예수 잘 믿어 행복하고, 그 행복을 여러분들과 날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신33:29 상)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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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1-10-20
  • 목회단상 > 어머니를 보며 인생을 생각합니다.
    목회단상 > 어머니를 보며 인생을 생각합니다.     돌을 다룰 때 석공은 돌의 결을 먼저 봅니다. 결대로 치면 돌이 나갑니다. 서툰 사람은 망치질부터 하지만, 힘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바람에도 바람결이 있고, 물에도 물결이 있습니다. 결을 거슬러 나가면 힘이 듭니다. 인생에도 거스를 수 없는 결이 있습니다.  코로나-19 기세 덕에 마스크까지 해야 했던 무더운 여름이 지났습니다. 이제 가을의 깊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곧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며 겨울을 맞이해야 하겠지요. 이것도 하나의 결입니다. 좋아하는 옷이라도 여름옷은 벗고 가을 옷을 입어야 합니다. 더욱 지혜로운 사람은 곧 다가올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하지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지금 나는 어디쯤 있습니까? 나이 먹는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결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근래에 어머니는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그 짧은 길이 잠간씩 기억나지 않습니다. 순간적이지만 가족이나 교우들 중에서 누군가의 얼굴이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만일 자신의 기억에서 가족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그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적어도 컴퓨터 고장으로 소중한 정보를 한순간 다 날려버린 난감함, 허탈함, 상실감……. 그보다는 더 큰 충격일 거라 생각됩니다. 배우 윤정희씨는 과거 이런 인터뷰를 했답니다. “삶이라는 건 젊을 때도 아름답지만 나이 들어도 근사한 것 아닐까요. 추하지 않고 건강하게 늙고 싶어요.” 그러나 그가 치매에 걸려 투병 중이란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마지막 영화에서 치매를 앓는 여성을 연기했었는데 본인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누구도 세월의 결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는데 요절 암송을 더 잘하고, 가족들 전화번호를 다 외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뇌도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기능이 약해져서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일부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기억이 깎이고 깎였을 때 좋은 기억만 남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 반대로 의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저장한다고 합니다. 치매 환자들이 욕을 하거나 자기방어를 하는 것은 그런 아픈 과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삼성병원 뇌신경센터 나덕렬 교수는 “치매에 걸린 후에도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예쁜 환자도 많다”고 합니다. “본인이 평소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 가족이 따뜻하게 품어줘야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예쁜 환자의 경우 대부분 가족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계신 경우라고 합니다. 혹시 나의 소중한 분들이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면 그분의 무의식에 있는 깊은 우물이 좋은 기억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지금 더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혼자 기거하시는 것이 염려가 되어 우리 집에 함께 계십니다. 어머니를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미국 누님은 통화할 때마다 눈시울을 적십니다. ‘막내가 힘드니까, 오빠네로 가시라’고 권합니다. 대구 형님도 오셨다가 어머니의 뜻을 못 이기고 그냥 내려갔습니다. 어머니는 여기가 편하답니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은 요즘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참 기쁘게 해드립니다. 여섯 식구가 한 상에서 밥 먹는 일이 요새는 드물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더 오래 있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뇌 속에 더 좋은 기억들을 차곡차곡 잠재의식에까지 쌓아가고 싶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말도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결 따라 사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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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3
  • 목회단상(牧會斷想)> 아직도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
        목회단상(牧會斷想) 아직도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 요즘 세상이 삭막하다, 정이 없다, 이기적이라고 말들 합니다. 개인주의는 시대적인 현상입니다. 코로나-19 환경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더욱 멀게 느껴지도록 합니다. 그럴지라도 세상은 아직 따뜻합니다. 따뜻하다고 느끼는 감정의 온도는 주관적이겠지만 제가 느낀 따뜻한 세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어머니는 명절에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손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집에 오셨습니다. 곤히 자는 손자를 깨우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선 길에 나왔습니다. 문제는 집을 나서는 순간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것입니다. 갑자기 기억이 상실된 겁니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집아 찾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자정이 되어서 굴다리 밑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효도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꾸어 전화 거는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종일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걷고 또 걸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시간에 산책을 나온 젊은 부부가 앉아 있는 할머니를 유심히 살펴 묻고 물어 집을 찾아주신 것입니다. 그 긴 하루 동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들네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자초지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리가 부어 일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찾아주신 젊은 부부에게 ‘삼계탕이라도 대접해야 한다’며 전화번호를 받아 놓으셨습니다. 아들네는 작은 선물을 사서 젊은 부부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젊은 부부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선물은 가족들과 함께 나누라고 고사를 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할머니가 회복을 하셨다니 도리어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갚을 길이 없는 고마움을, 대신 축복으로 하늘에 구하니 하나님이 제 마음에 또 하나의 선물을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은 ‘아직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막내 손주는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습니다. 물집 잡혀 부어 있는 할머니의 작은 발을 붙잡고 ‘할머니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어린 손자, 그리고 그 등을 두드려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 참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는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2. 명절에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그간의 겪었을 어려움들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성도의 모습 #3. 아이 친구 엄마를 전도하기 위해 마음 졸이다가 주일 날 먼 거리를 동행하여 예배드리고 와서 기뻐하는 성도님의 환한 얼굴 #4. 갑자기 건강이 나빠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건널목을 나란히 건너고 있던 노부부 성도님의 뒷모습 #5. 아들의 진지한 신앙고백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님의 신앙 #6. 취업 시험에 실패한 후 낙심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전하는 교회 청년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이런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은 제게는 아름답고 참 따뜻합니다.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한 이유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따뜻한 사랑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과 사람 안에 새겨진 까닭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며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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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1-10-06
  •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부모에 대한 최고의 불효는 용돈 못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최고의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날 사랑할까요? 태양은 자체가 뜨거운 열이기 때문에 지구에 따뜻한 열을 줍니다. 살면서 춥다고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구름이 가릴 뿐이지요.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죄가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계획하셨고, 만드셨고,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서 그 아들의 생명을 대신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시대를 감당하고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학교도 안 나왔습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방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고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자존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에서 오는 자존감입니다. 이 확신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부도가 나도, 어려움이 있어도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이 확신이 있으면 인물이 됩니다. 시편 139편에 보면, 하나님은 모태로부터 나의 몸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공부 좀 잘한다고, 돈 좀 있다고 자존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계획하셨다. 나를 만드셨다.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했다’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누가 미켈란젤로의 미술작품에 손을 대겠습니까? 누가 베토벤의 곡에 손을 대겠습니까? 누가 김소월의 시에 손을 대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내가 보기 좋다’ 하시는데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변합니다. 옆에서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그 남자도, 여자도 다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한번 나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후로는 한 번도 그 사랑 변치 않습니다. 내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실수가 있거나 없거나 언제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미국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2%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 경제의 50%, 좋은 논문의 30%는 다 유대인들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선민사상의 영향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 그 사람이 위대한 인생을 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실패해도,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어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주심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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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1-09-29
  • 목회단상> 크게 웃게 되리라
        크게 웃게 되리라 자녀가 웃으면 같이 행복하고, 자녀가 울면 마음이 아픕니다. 목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교인들에게 웃을 일이 생기면 덩달아 신이 나고 울면 같이 힘듭니다. 기도 시간에 보니 눈물을 흘리는 교인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옛날 시골교회 부흥회에서 강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시종 눈물을 흘리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의 얼굴을 보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흥강사 목사님 수염을 보니 애지중지 키우다가 며칠 전에 죽은 염소가 생각나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아내가 새벽기도를 드리며 ‘하나님, 왜 우리 교인들은 이렇게 눈물 날 일들이 많나요?’ 라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제 크게 웃게 되리라” 는 하나님이 주신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 감동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확신케 하는 몇 가지 간증을 그날 듣게 되었습니다.  간증1. L집사님은 지난 한 주간 친정아버님과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한동안 연락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일주일의 시간이 완전 동굴 같은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힘들어 좋아하실 만한 새 옷을 선물로 사서 찾아뵈었습니다. 마음을 푸신 아버지께 “내일 엄마랑 같이 교회 가세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대답이 “알았다” 이었습니다. 평생을 거절하셨기에 귀를 의심하고는 재차 약속을 받았습니다. 정말 아버지는 주일날 아침 성경책을 손에 들고 교회에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이 케익을 사서 축하하며 기뻐했습니다. 주일날 친정 교회에 다녀오신 집사님은 저의 설교를 온라인으로 다시 들으며, 꼭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여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쁨으로 은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간증2. K권사님은 아들의 진로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다며 환하게 웃으며 간증했습니다. 동굴이라도 감사하며 찬양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더니 길이 생겼다고 합니다. 비록 그 길이 작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기에 아이의 인생에 밝은 새날을 여는 길이 될 것입니다. 간증3. 고3 딸아이는 원서접수를 앞두고 이틀간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더니, 하나님께서 ‘응답이라는 틀 안에 너의 기도와 믿음을 가두지 말고, 나와 동행하는 순간에 마음을 두어라’ 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라(롬12:12)” 는 말씀도 받았습니다. 금요기도회를 마친 후에 환하게 웃으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금요일 하루 동안에 여러 간증들을 들으면서, ‘웃음’이라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교인들이 저의 얼굴을 보고 ‘죽은 염소’ 생각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통하여 울고 웃음에 감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안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90세 할머니였던 사라도 손자 같은 아들을 낳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기의 이름은 ‘이삭’ ‘웃음’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며,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교회는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는 공작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크게 웃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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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5
  • 목회단상 > 어느 고3의 행복론
        목회단상 > 어느 고3의 행복론 고3인 저의 딸이 쓴 행복에 관한 에세이를 옮겨봅니다. 아빠인 저의 생각과 흡사한 까닭이기도 하고, 앗싸~ 목회단상 한 주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도 없잖습니다. 세상에 많다던 ‘딸바보 여기도 하네 있네~’라고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하, 어느 고3의 행복론) 고3의 수식어는 ‘행복한’ 보다는 ‘괴로운’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1년만 참고 죽은 듯이 공부만 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적잖게 들어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이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의 미래를 위해 현재는 불행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과연 현재의 시간을 고통으로 채우고 행복을 미룬다면 미래가 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누리는 법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과 미래를 준비하는 삶 중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현재의 나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전제는 내가 나의 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미래에 존재할 어떤 목표를 이룬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오늘의 나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해집니다. 마음의 병이 쉽게 생깁니다. 혹여나 세웠던 목표를 이루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마음의 병은 신경 쓸 수 없는 시험 준비생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현재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래의 특정한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은 현재가 불행하기 쉽습니다. 둘째,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이 미래를 망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미래를 행복하게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저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고 그 공부를 하려면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의 할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처음의 행복이 희미해져 가면 그날 공부를 망설임 없이 중단합니다. 오늘의 저는 미래를 준비했지만, 그것보다 더 오늘의 행복을 중요시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저의 미래가 밝음을 확신합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노력했으며,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습관을 지니면 미래에 고난이 찾아올 때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기에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미래를 대비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현재를 중요시하는 삶은 YOLO가 아닙니다. 미래를 대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비추는 햇살에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주어진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에 저도 저를 사랑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오늘의 행복”을 누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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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8
  • [목회 단상] 총이 셀까요? 말이 셀까요?
        [목회 단상]     총이 셀까요? 말이 셀까요? 지구상에 총에 맞아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말에 맞아서 죽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말에 맞아 죽고 상처 입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가까운 곳에 말에 맞아 아파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잘해보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좋아야 하는데, 솔직히 기대보다는 염려가 앞섭니다. 난세에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해답을 제시하기도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 비전보다는 서로를 향한 비방과 증오와 독설이 난무합니다.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 부상자가 지도자가 된다 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걱정입니다.  ‘데이 세퍼트’란 사람이 쓴 글을 보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세 개의 황금 문’을 통과한 후 말하라고 권합니다. 첫째 황금 문은 ‘그것은 옳은 말인가? 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늘 가짜 뉴스만 골라서 듣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둘째 황금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불필요한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 없는 말은 소음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가장 좁은 황금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옳은데 듣고 나면 기분이 나쁩니다. 반항심이 생깁니다. 주로 엄마들이 그런 은사(?)가 있죠. 뻔한 잔소리보다는 무한 신뢰를 담은 미소가 더 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 말고 크게 외치라고 합니다. 옛 선조들은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하면서 입들 다물어버리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말을 하여야 할 경우 “일언전심사(一言前十思)”라고 해서, “열 번 생각하고 한마디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귀는 둘인데, 입은 하나만 만들어주신 이유를, 들은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과연 침묵이 언제나 금일까요? 성경은 말에 관한 교훈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두 구절만 인용합니다. 첫째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에베소서 4:25) 두 번째는, 덕을 세우고 은혜가 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29) 말은 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잘 사용하여 이웃에게 큰 덕을 세워야 할 귀한 은총의 수단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의 말만 바뀌어도,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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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1
  • 신앙과 삶의 깊이
    #1. 교양 : 신앙의 깊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유명한 금식기도원에 다녀올 때 기도원 버스에서 희한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한 주간 금식기도를 마치신 분들이 버스 자리 때문에 다투는 것입니다. 말이 점점 험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민망했습니다. 예수님은 “겉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속옷까지도 주라” 하셨는데, 어쩌자고 자리하나 양보를 못하고 다른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까요. 양보는 차치하고 교양이라도 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앙에 걸맞은 교양을 가져야 합니다. 예의 없는 언행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지적받지 않으면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교양이 없는지 잘 모릅니다.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말과 태도가 상대를 얼마나 불쾌하게 할지, 힘들게 할지, 공동체의 분위기나 격을 얼마나 떨어뜨릴지 생각해야 합니다. 안에서 깨진 사발이 밖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겠습니까? 교양을 갖추지 못한 신앙인은 교회 밖에 나가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교양 없는 교회와 신앙인이 전하는 복음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교회 밖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교양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해야 합니다. 거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은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2. 깊이 :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교인들의 피상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신앙이 깊이가 없습니다. 그가 하는 예수님 이야기는 별 감동이 없습니다. 찬양도 기도도 말도 피상적입니다. 깊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신앙이 냄비처럼 빨리 뜨거웠다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좀 열심히 하면 주변 사람들이 ‘응~ 저러다 금방 식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신앙이 가볍게 보입니다. 그의 처신이 가볍고 삶도 깊이가 없습니다. 그런 신앙으로는 역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과 삶의 깊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회개의 깊이가 신앙의 깊이입니다. 연약한 자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존재와 분리할 수 없는 무서운 죄악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오는 깊은 회개가 있는 신앙은 다릅니다. 다윗은 어느 날 말씀으로 자신의 죄를 지적 받았을 때에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뼈 속까지,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자아 인식은 그를 깊은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깊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아~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찬송 가사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그가 부르는 찬양, 기도, 말 한마디에 신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시련은 연약한 자아에 대한 깊은 인식과 깊은 회개로 이끄는 통로입니다. 이 과정을 거친 사람은 작은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압니다. 신앙과 삶의 깊이는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여러분의 신앙과 삶 속에 형언할 수 없는 하늘의 깊이가 느껴질 수 있길 축복합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 칼럼
    • 목회단상
    2021-08-18
  • [목회 단상] 무례한 기독교가 되면 안 됩니다.
        [목회 단상]   무례한 기독교가 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한 분 하나님, 유일한 구원자를 믿고 섬깁니다. 기독교 진리의 본질상 독선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 다원주의, 상대주의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 체계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하여는 타협이 없어야 하지만, 그 진리를 세상에 드러낼 때 무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과격하고 무례한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성경에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개신교회는 독단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악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이유 중 하나가 무례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타문화와 종교, 그리고 다른 가치관들을 너무 쉽게 폄훼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사에서 십자군 전쟁의 폐단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힘으로 강요했던 실패한 역사이죠. ‘복음’을 받을래, ‘칼’을 받을래? 라는 방식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정서가 세상에 표출될 때에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거부합니다. 무례한 교회가 전하는 소식은 세상이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의 실현으로 세상에 오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초대교회도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 반정부운동을 펼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때리면 맞고, 용서하며 끝까지 진리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랑의 태도에 핍박하던 사람들이 감화를 받고, 거부하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교회의 이미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것이 아닐까요? 풀러 신학교 총장을 지내신 리처드 마우 교수의 <무례한 기독교>라는 책을 보면, 진리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독교적 교양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큼 기독교적 교양이 필요합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교회는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향한 기독교적 환대가 필요합니다. 성경 시대 유대인들처럼 진리를 소유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세상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심판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마지막에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니,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정당하고, 세상은 모두 악하다 하지는 않았는지, 세상이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막고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 안에서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장래의 형제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무례한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적 교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이 좋으면 예의도 발라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장윤석(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 칼럼
    • 목회단상
    2021-08-11
  • [목회 단상]
        [목회 단상]   - 코로나19로 사회적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어 교회·성당·사찰에서 대면예배가 금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소규모 예배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믿음을 가지신 분들이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없는 환경에 있습니다. 인천공항뉴스에서는 믿음으로 마음의 안식을 찾는 분들을 위해 지면 설교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목회단상을 써 주시는 장윤석 목사님은 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매주 지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 독자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인천공항뉴스에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지면을 열어둡니다. 지면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언제든지 저희에게 좋은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열정! 열정! 열정! 젖은 성냥으로는 불을 붙일 수 없습니다. 열정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를 열정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을 만나는 사람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은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삶의 의욕도, 아무런 열정도 없는 자에겐 좋은 일이 나타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걷어차 버립니다.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은 모두 열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적인 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 위대한 인생을 삽니다. 나에게 열정이 없다면 하나님에게 다가가면 열정이 생깁니다. 영어로 열정(Enthusiasm)은 헬라어로 열정이라는 단어(Ancient Greek : ?νθουσιασμ?? enthousiasmos)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뜻은 en(안에), Deos(하나님), 즉 ‘하나님 안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온 세상을 만드신 열정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면 열정이 생깁니다. 모세는 80세 노인이었지만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애굽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모든 비전과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다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불태워도 아깝지 않을 비전과 열정을 회복했습니다. 거리 두기 4단계 격상으로 교회는 다시 비대면 예배로 전환했습니다. 작년부터 반복적으로 대면-비대면-대면-비대면 형태가 반복됐습니다. 그동안 제한적이지만 20% 대면 예배라도 드리면서 조금씩 예배와 사역이 회복되나 싶었는데, 다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져버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방역지침은 신앙과 예배의 힘 빼기에 딱 좋은 환경입니다. 믿음 좋았던 사람도 약해져 가고, 약한 사람은 아예 믿음에서 떠나가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자는 비전과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다가가서 그분 안에 있는 열정을 가진다면 오늘을 멋지게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조금 오버를 해야 할 때입니다. 배나 더 열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목사이니까 19명씩 열 번이라도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에, 가사에, 학업에, 일터에, 사명에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진 하루를 살라고 시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열정의 하나님과 함께 삶의 열정을 가지고 하루라는 선물의 끈을 풀어보십시오. 곧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 칼럼
    • 목회단상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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