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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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교회
    교회 주보를 보면, 혼사와 장례 소식이 실립니다. 요즘은 혼사보다 장례 소식이 주보에 더 많이 실립니다. 인구추세로 보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개척 교회 때는 성도의 가정이 슬픔을 당할 때면 목사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더 많은 인원의 교인들이 장례예배에 참여한다면 더 큰 위로와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소수정예(?)로 가서 예배드릴 때가 많았지만 마음만큼은 정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지난 주간은 장례가 두 군데가 겹쳐서 있었습니다. 한군데는 전라남도 곡성, 또 한군데는 강릉이었습니다. 곡성은 부교역자님과 청년들이 가고, 강릉은 제가 가서 장례를 집례하였습니다. 장례 기간 국토의 동서를 두 번 횡단하며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한마음으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슬픔을 당한 지체를 위로하는 모습에 개척 교회 때를 떠올리며 새삼 감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힘이 났습니다. 장례식장을 드나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장례식을 교회에서 하면 어떨까?’ 요즘은 교회에서 교인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흔치 않아 보입니다. 최근 재벌가의 결혼식을 정동교회에서 올린 것이 뉴스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교인 집안의 결혼식은 대부분 교회에서 올렸고 당사자들도 충분한 시간 활용 및 신앙의 이유로 만족했었습니다. 좋은 전통은 다시 살려 나가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장례예배도 자신이 몸담고 섬겼던 교회에서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공로가 있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장례예배를 교회장으로 치르는 경우는 있지만, 평신도의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성당 내 여건이 허락된다면 장례는 물론이고 성당 내 납골당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대형 성당의 예입니다. 개신교인들은 평생 교회를 다녀도 죽어서는 교회를 떠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낸 후 떠납니다. 옆 빈소에서 들리는 타종교 예식, 곡소리, 향 냄새, 술 냄새, 심지어 화투 소리까지 어수선합니다. 예배드리는 한쪽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담하는 것도 거슬립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장례식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물론 신학적인 지지, 제반 시설 등 현실적으로 타당한 조건을 갖추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조건만 된다면, 평소 천국 복음을 듣고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자신의 교회에서 천국 환송까지 한다면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임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으며, 그로 인한 신앙적인 유익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교회가 교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야말로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축복받으며 출생해서 애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영적 가족의 정서가 진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혼인 예배를 드리는 예식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천국으로 환송하는 장례 공간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고, 당장 실현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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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3

실시간 목회단상 기사

  • 베드로의 파이팅이 필요합니다
    2023년도 “예수로 충만”을 선포하며 벌써 한 분기를 달려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여러분들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대적 상황은 어렵지만, 상황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상황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대지를 적시고 할 일을 다 하듯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헛되지 아니하고, 말씀의 내용을 다 성취하십니다. 따라서 상황이 어려울수록 성도는 더욱 하나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환경을 딛고 서는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그때 배에 타고 있던 베드로의 반응이 역대급입니다.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역시 베드로! 멋지지 않습니까? 배 안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놀랐을 것 같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주님, 우리 모두를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했다면, 다른 제자들의 반응은? “베드로, 미쳤나? 니나 가라 물 위로!” 이러지 않았겠나, 혼자 상상하며 웃어 봅니다. “오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베드로가 물 위로 걷는 초유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풍랑이라는 상황을 기적으로 딛고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물에 빠진 것을 두고, 함부로 베드로의 믿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에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야 신이시니 물 위를 걷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도 물 위를 걸을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오라’ 하시는 말씀 붙들고 배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목숨을 건 것이죠. 멋지지 않습니까, 손뼉 쳐주어야 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딱 한 줄이지만 강렬합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때던 시절, 연탄재는 자기 몸을 다 태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고 남은 흔적입니다. 그만큼 자기의 삶을 다 태워보지도 않은 사람은 함부로 연탄재를 차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함부로 베드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물 위를 걷는 베드로를 보고, 다른 제자들도 “주님 우리도 오라 하소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죠. 배 안에서 몸을 사리고 있던 제자들은 기적을 구경했지만, 기적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드로의 파이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베드로처럼 자신의 한계 밖의 세계로 순종해 봅시다. 환경(시대)을 탓하지만 말고 시대를 향하여 도전합시다. 주님 바라보고,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물에 빠지는 것을 염려치 마십시오. 베드로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지만, 연약한 인간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붙잡아 주신다는 것이고, 그때부터는 예수님과 함께 문제를 극복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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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 성경에서 금을 캐어냅시다
    성경은 지금부터 대략 3500년 전부터 2,000여 년 전까지 약 1500년 동안 기록되었습니다.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내용과 보존 형태만 놓고 보아도 여느 책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책입니다. 성경만큼 오래되고,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과거나 현재나 한결같이 읽히고 있는 책은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단순히 유익한 고전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 속에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으며, 인생을 사는 지혜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인생의 보물을 캐어내어야 합니다. 성경은 지혜의 책입니다. 욥기의 말씀에 보면, 사람이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을 금을 캐는 과정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욥 28:1-2). 본래 금은 땅에서 캐낼 때 돌 같은 불순물이 섞여 있습니다. 제련 과정을 거쳐서 불순물을 걸러내야 순도 높은 금이 나옵니다. 성경은 금의 원석과 같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나오고, 인간의 말도 나오고 때로는 사탄의 말도 나옵니다. 성경에는 의인의 행적도 있지만, 악인의 행적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같이 훌륭한 신앙의 위인들도 있지만 애굽의 바로와 같은 사람도 있고,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 읽는 분들은 성경 한 페이지마다 쉼표도 없이 빼곡하게 기록된 글을 보면, 읽기도 전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로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책이요 지혜의 책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혜가 여기 있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설령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이 금과 같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여기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을 최종 최고의 권위로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성경 속에서 금을 캐어낼 수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가 유행이지요. 유튜브 영상 중 성경에서 금을 캐어낼 수 있도록 가이드를 잘해 주는 채널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튜브는 성경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 설명하기 난처한 얘기들만 조목조목 고르고 뽑아내서 그럴듯하게 설명합니다. 겉으로는 성경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실은 성경을 깎아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도록 하는 영상을 만듭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몹쓸 돌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금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구원의 책으로 읽습니다. 인생을 사는 지혜가 성경 속에 있음을 믿고 읽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서 혼자 손뼉을 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마치 황홀하고 멋진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금을 캐는 사람에게는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도록 합시다. 금주의 요절을 암송합시다. 믿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여러분 모두가 금을 캐는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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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9
  • 진달래가 지고 여름을 불러오듯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꽃들이 활짝 피고 있습니다. 그중에 먼저 피고 먼저 지는 꽃은 진달래입니다. 고난주간과 부활 절기에 연상되는 꽃도 진달래입니다. 진달래는 ‘내가 진다고 할래’라고 해서 진달래입니다. 진달래는 아무도 짐 지려 하지 않는 추운 겨울을 짊어지는 꽃입니다. 그래서 삭막하고 황량한 음지에서 피어납니다. 봄꽃이 져야 여름이 오고, 꽃이 져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진달래는 아름다운 선홍색 꽃잎을 떨궈 버리고 먼저 한 알의 밀알로 지고 맙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 인류의 죄 짐을 다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진달래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보혈을 연상하게 하고 그 붉은 빛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빛입니다. 그래서 진달래는 십자가의 꽃입니다. 먼저 진 진달래가 찬란한 여름을 이끌어오듯, 예수님께서 희생하심으로 찬란한 부활의 첫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래서 진달래는 부활의 꽃입니다. “봄마다 죽는 꽃이 있기에 찬란한 여름이 오나니, 먼저 지고 죽는 십자가의 꽃,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의 꽃, 진달래!” (인용한 글)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의 말처럼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열심히 믿을수록 더욱 불쌍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이고, 그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처음 열매가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지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시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길 “예수님의 부활은 첫 번째 열매로서의 부활이요, 예수를 믿는 자는 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마귀의 절대적 무기인 사망 권세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마귀는 무기가 없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거짓말 말고는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그 거짓에 속지만 않으면 승리합니다. 싸움은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거짓에 속지만 않으면 됩니다. 부활 신앙은 성도에게 최고의 무기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사랑하는 성도님을 먼저 천국에 떠나보내고 장례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성도들이 찾아가서 천국 찬송, 부활 찬송을 힘있게 불러드리고 위로하였습니다. 장례식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어 버렸습니다. 죽어도 산다는 부활이라는 무기로 모든 원수를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부활 신앙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생명 내 생명! 할렐루야!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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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부활절 40일 전부터 지킨다고 해서 사순절입니다. 40일은 성경에서 의미 있는 기간인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며 고난받으신 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사순절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대체로 2세기 서방교회에서 사순절을 공식적인 절기로 지키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순절은 교회법으로 지켜야 하는 구속력은 없으며, 교회마다 경건의 유익을 위하여 자율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이란 사순절이 끝나는 주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한 주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외쳤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올해 2023년 종려주일은 4월 2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장사하는 집은 오늘로 말하면 ‘슈퍼마켓’ 또는 ‘마트’입니다. 저는 마트에 갈 때마다 참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빨리 집에 가자고 조릅니다. 별로 좋은 남편은 못되나 봅니다. 마트는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하나라도 더 팔아서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런 모습이라 예수님께서 머무시기에 너무 피곤하고 마음이 힘드신 것입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 사람들의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장터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을 드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권력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신 것입니다. 고난주간이란 종려주일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한 주간을 말합니다. 고난주간 목요일은 최후의 만찬을 하신 날이고, 금요일은 십자가에 달리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째(금, 토, 일) 되는 날인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사실상 기독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인의 죗값을 대속(Redemption)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몸의 부활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고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고난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집이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3:16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인 몸과 마음을 온갖 욕심으로 채우며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채찍 삼아서 잘못된 몸의 행실과 마음의 더러운 욕심을 뒤집어엎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채찍으로 뒤집어엎어야 할 몸의 행실은 무엇이며, 마음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올해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주제: 내가 만든 신)를 통하여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여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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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성도의 교제
    교회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을 향하여 함께 축복하며 거룩한 행진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은혜의 삶을 함께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형제가 우애할 때 부모의 마음이 행복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축복할 때 즐거워하십니다. 성도의 교제는 ‘이 시간 이후에 교제의 시간이 있습니다. 남아주세요. 다과가 있으니까 가지 마세요’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삶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 이후에 소모임이 필요합니다. 예배는 많은 회중이 모이기 때문에 은혜의 선포가 있는 시간이며, 소그룹은 그 선포된 은혜를 함께 적용하며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성도의 교제를 경험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소그룹이 풀뿌리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제로 들어가면, 속마음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오늘 날씨나, 경기 침체’ 같은 피상적인 대화가 아닌,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문제를 나누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물론 자신을 오픈할 때 거부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지만,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오픈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함께 열리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눈물, 공감, 치유, 위로와 같은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마치 몸에 병균이 침투하면 몸의 각 기능이 상호작용함으로 면역력을 키워서 자연 치유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에는 이런 자연치유력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건강해진다는 뜻입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함께 그 문제에 참여하여 어려움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공감된다는 말은 ‘얼마나 힘이 들까!’,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저분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짐을 함께 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법, 곧 사랑의 법이 성취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서로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약함 때문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강하면 그런 것들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서로 교제하며, 신뢰를 쌓아가며,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사랑방은 이런 교제를 나누길 원하는 좋은 훈련장입니다. 사랑방 리더들의 섬김은 은혜로운 교제를 위한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랑방마다 눈물을 닦아 주는 소리, 소망의 기도 소리, 힘찬 찬송 소리, 행복한 웃음소리, 서로를 축복하는 소리가 가득해서 행복합니다. 우리 교회는 참 행복하고 좋은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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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9
  • 바른 신앙을 위하여
    요한일서를 쓴 사도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에 영지주의 이단이 교회에 파고들어 와 교인들의 신앙을 위협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매력적인 면이 있어서 여기에 빠져드는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요한은 이 영지주의 이단과 맞서 싸우면서 성도들에게 이단을 분별하는 한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관해 정확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영지주의 이단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성육신)을 시인하는가 부인하는가로 이단 여부를 분별하였습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만이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은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인 신앙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소유할 수 있음은 큰 축복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통해서 성경을 바로 배우고 훈련해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관련된 책을 찾아보든지 그 분야의 전문가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수고가 필요 없고 그냥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웬만한 것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듣고 싶은 음악을 모아서 듣기도 합니다. 유튜브의 세계에는 별의별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이로 된 정보를 잘 보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해 올려놓으니까 굳이 종이로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유튜브는 유익하기만 한가요.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유튜브 중에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퍼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심각한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성경 공부를 할 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단 사이비 세력은 유튜브를 통해 자기들의 교리를 선전합니다. 그럴싸하게 포장했기 때문에 여간해서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성경 공부를 하는데, 듣는 분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습니다. 같은 주제로 유튜브에서 들었던 내용과 저의 강의가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상한 유튜브를 본 모양입니다. 또 요즘은 유튜브에 숏츠 영상이 많이 올라옵니다. 숏츠엔 유명 설교자의 설교 한 토막만 편집하여 올린 영상들이 많습니다. 이는 설교자의 의도나, 설교의 앞뒤 문맥과 상관없는 편집일 수 있습니다. 편집자의 편향된 의도로 만들어진 비슷한 내용의 숏츠 영상을 알고리즘으로 매일 보면서, 자신의 확증편향을 더 굳어지게 합니다. 이단에 가지 않아도 이단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험상궂은 얼굴에 뿔이 달리고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달려드는 게 아닙니다. 광명의 천사로, 친절한 사람으로, 때로는 유튜브와 같은 문화의 도구를 통하여 접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분별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라고 권고합니다. 유튜브를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유튜브가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신앙의 방법은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성경을 배우고 바른 신앙의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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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03-22
  • 한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목회 현장에서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대하며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개척 목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모와 단둘이서 드리던 새벽예배 시간에 첫 번째 교인이 될 한 사람이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반가움과 동시에 텅 빈 예배당에 실망하고 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 한 사람이 다음 주일에 한 가정을 데리고 와서 등록했을 때 온 천하를 얻은 듯 기뻤습니다. 반면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교회가 술렁이고, 겨우 몇 명 모였던 교인들이 흩어질 때는 마음속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울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합니다. 역사도 한 사람을 통해서 발전돼 왔습니다. 반대로 한 사람을 통해서 퇴보하기도 했습니다. 아담이라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사망과 저주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반대로 인류의 가장 큰 전환과 평화를 가져온 위대한 구원의 사건도 예수님 한 분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시는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도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한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열면 눈길을 끄는 영상들이 화면에 뜹니다. 그중에는 찾아보려고 생각했던 정보의 화면도 있습니다. 마치 제 생각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제 생각이 털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언젠가 딸아이가 저의 핸드폰을 사용할 일이 있어서 유튜브를 열었는데 숏츠에 덕스럽지 않은 영상이 몇 개 걸려있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난 본 적도 없는데 이런 영상이 왜 자꾸 뜨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더니, “아빠가 안 열어 봐도, 그 영상 화면에 눈길을 오래 머물고만 있어도 뜬다”라고 했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기계가 저의 행동 패턴뿐 아니라, 숨겨진 마음까지도 다 읽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의 힘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반복됩니다. 그 행동을 데이터화 해서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만듭니다. 이 알고리즘을 미디어에 장착해 사용하는 것이 AI 인공지능입니다. 그 인공지능이 휴대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의 행동의 방향을 알고리즘으로 예측합니다. 한편으로는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합니다. 한편 하나님의 예측 시스템인 ‘갓데이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는 역사의 시작과 끝, 그 이후 영원까지의 정보가 다 들었습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복이 있는지 다 들어 있습니다. 갓데이터는 빅데이터로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내면과 영적인 일들까지 모두 예측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가장 바르고 복된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로는 분명히 절망이요, 사망으로 예측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새로운 삶으로 물줄기를 바꾸어 살아감으로써 새로운 존재 갓데이터가 보증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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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2
  • 인생에 대한 단상
    돈은 벌어도 늘 모자라고, 그 많은 세월과 무수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하나 뚜렷하게 해 놓은 것은 없고, 대단한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면서 늘 허둥대며 돈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며 너무나 버겁게 살아갑니다. 육체는 현실을 살기에 돈이 필요하고, 영혼은 돈이 아니라 사랑을 원하지만 결국은 돈에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려서 육체와 영혼 중 어느 한 부분도 채워지지 않은 채로 허덕이는 것이 인생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전도서 1:8)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부와 가난이 수시로 교차하는 천국과 지옥의 공존지대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천국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지옥처럼 고통스럽게 살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천국처럼 행복하게 살아야 할 소중한 인생을 지옥처럼 고통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고 답이 있습니다. 몸에 힘이 없고 기운이 없는 것이 몸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현재 자신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내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생이 아프면 인생 병원에서 진단받고 처방받아 인생을 치료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낯선 곳을 처음 갈 때 길을 알면 쉽고 길을 모르면 어려운 것처럼, 우리 인생도 길을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내 인생 중 과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꼭 이렇게 현재의 방식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통해서 인간을 진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남은 인생은 행복과 소망으로 가득 찬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특히 죽음 앞에 설 때에도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만족스러운 인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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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2
  • 화무십일홍
    드라마 카지노의 한 장면을 보면, 정팔(배우 이동휘)이 무식(배우 최민식)에게 ‘권무십일홍’ 이라며 “열흘 동안 피어있는 꽃은 없다”라고 유식한 척합니다. 그 말을 무식이 받아서 ‘화무십일홍’으로 정정해줍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즉 인생 부귀영화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남송의 시인 양만리의 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성경에도 같은 내용의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 40:6~8)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도 언젠가 풀의 꽃처럼 떨어지고 쇠잔할 때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육체를 너무 자랑하지 말고, 늘 겸손한 삶의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심장이 2배 이상 튼튼하여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건넜다는 조오련 씨도 57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이봉주 씨도 근래 허리 통증으로 투병하며 “잠시라도 뛰어보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세계적인 모델이며 패션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크리시다 로드리게스는 암에 걸렸습니다. 그녀가 임종 직전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차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병원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내 집에 디자인이 다양한 옷과 신발, 장신구 등 비싼 물건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병원의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다.” “은행에 아주 많은 돈을 모아 놓았다. 그러나 지금 내 병은 많은 돈으로도 고칠 수 없다.” “내 집은 왕궁처럼 크고 대단한 집이다. 그러나 나는 병원 침대 하나만 의지해 누워 있다.” “나는 별 5개짜리 호텔을 바꿔가며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병원의 검사소를 옮겨 다니며 머물고 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화무십일홍”과 같습니다. 이런 인생의 이치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도 들의 꽃처럼 시들고 마르게 됩니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9개 국어를 마스터한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고, 당시 최고 권력자인 남성 2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런 그녀도 화려한 침대 위에 독사를 풀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마를린 먼로는 전 세계의 남성들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마음마저 훔쳤지만 36세에 꽃처럼 갑자기 사그라져버렸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영웅호걸로 한 시대를 풍미해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우리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God-less) 인생의 결국은 “허무”만이 남습니다. 인생이 영원한 의미를 가지려고 하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며, 우리를 영원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하나님을 만난다면 영원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내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들판에 피는 꽃과 같은 짧은 인생임을 알고 세월을 아낍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살아갑시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영원히 복이 될 것입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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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8
  • 시간이 빠르다고요? 시간이 답답하다고요?
    2022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연세 드신 분은 세월 빠르다고 불평들 하지요. 또 포스트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신냉전의 국제정세로 인한 깊은 경제불황 등으로 인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은 지금 시간이 너무 답답하다고들 합니다. 가파른 금리상승, 집값 하락에 ‘휴~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답답한 시간을 불평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빠르다구요? 또는 시간이 답답하다구요?”라고 되묻는 한 소년을 소개합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만난 17세 홍원기 소년입니다. 별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년’인데, 선천적으로 빠르게 노화되는 ‘소아 조로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을 앓는 환자의 평균 수명은 15세. 전 세계 120명, 우리나라에는 단 한 명뿐인 희귀병입니다. 목사님 아들인 원기 군은 다섯 살에 소아 조로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유튜브는 현재 23만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인기 유튜브입니다. 2년 전 처음 유튜브에서 본 15세 소년의 얼굴과 몸은 가냘팠지만, 그에게서 포기, 원망, 절망, 좌절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병 때문에 원망하기보다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제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인기 유튜버로 즐겁게 살다 보면, 저도 멋진 어른이 될 수 있겠죠. 여러분도 모든 순간, 삶의 매시간을 사랑하세요” 어릴 적 철없는 친구들에게 외계인 같다고 놀림 받을 때면 속이 상했지만, “하나님 왜 이렇게 절 만드셨냐”라고 불평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때때로 죽음의 두려움이 닥쳐올 때면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나도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며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합니다. “원기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항상 제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니?” 이 질문의 답변은 재미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머리카락 많이 자라게 해주세요. 머리카락 생기면 저도 염색을 꼭 한번 해 보고 싶거든요” 소년의 버킷 리스트는 ‘머리카락 갖기, 여친 만들기, 유튜브 구독자(욘니와 치애) 100만 되기, 아빠랑 영국 가서 손흥민 선수 경기 보며 응원하기’라고 합니다. 소년의 유튜브를 본 후 2년이 지났습니다. 소년에게 2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얼마 전, 한 방송사의 <뜨겁게 안녕>이라는 프로그램에 소년의 가족이 나왔습니다. 소아 조로증 환자에게 17세는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안녕 하우스>에서 아빠가 미리 20세 생일 케익을 준비하고, 가족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하지 않도록... 최고의 하루를 사는 거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즈음,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 ‘시간이 답답하다’ 이런 투정(?)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 감사만 해야겠다 다짐합니다. 아들이 더벅머리를 하든, 꽁지머리(+염색)을 하든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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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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