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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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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복.jpg
 

 

 

 

 

 

 

김홍복  전 인천 중구청장 / 본보 자문위원장

 

변동불거(變動不居: 변하고 움직여 가만히 있지 않는다)

 

1991년 김영삼 정부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인천 중구의회는 3월27일 선거를 실시하고 4월15일에 개원했고, 인천시의회 선거는 6월에 치러졌습니다. 중구의회에서는 영종동에서 필자와 용유동에서 차석교 의원이 당선됐고, 우리 지역 시의회의원으로는 이세영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이 세 사람의 조합을 두고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삼형제’라며 주민들께서 축하해 주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의대교를 건너 무의도 곳곳을 들러보면서 문득 인천 중구의회가 시작된 1991년 당시 차석교 초대의원님과 함께 했던 의정 활동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당시 지방의회 선거에서 용유동 주민 분포가 용유본동 2,200명과 무의동에 500명이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무의동에 거주했던 차석교 후보님이 당선되었습니다. 차 의원님은 무의 9통에서 11통까지의 도로 개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당시 무의9통 큰무리에서 11통까지의 도로는 경운기조차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는데 당선되고 차석교 의원이 발의하고 제가 동의함으로써 도로 개설의 단초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자비를 써가며 토지주 189명을 찾아 일일이 소통하고 도로개설을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니셨던 차석교 의원님의 열정과 노력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특히 차 의원님은 당시 중구의회 의원 13명 전원을 무의도 현장으로 대동해 경운기를 타고 현장을 다니며 도로개설의 당위성을 설명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열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이 근간이 되어 훗날 무의11통에서 소무의도(12통)로 인도교 교량도 놓이게 됩니다. 이때는 차석교 의원님이 수협조합장을 맡으실 때였고 저는 중구청장을 역임하면서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차석교 의원님은 또 연안부두에서 무의도까지 오가던 ‘관광5호 여객선’이 손님이 줄어 운항을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광객 유치’에 팔을 걷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호룡곡산과 국사봉 등산로 개발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임야 소유주를 설득하고 중앙 언론을 통한 무의도 관광여행 홍보를 하게 됩니다. 그런 활동이 하나 둘 모여 관광객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힘을 모아 ‘실미도 자연발생유원지’와  ‘하나개해수욕장’을 관광지화 하여 지금의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무의10통 강충부 전 통장님께서도 힘을 보태주셨기에 하나개해수욕장이 주민의 소득 증대와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실미도 재빼기길을 차석교 의원님이 당시 9,000만원이라는 거액의 자비를 들여 도로를 개설하면서 실미해변이 관광지가 되었고, 현재의 쏠레오 투자회사가 복합리조트 개발계획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신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관광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덕교8통에서 잠진도길 바다에 폭 10m 도로를 개설하기까지 이세영 시의원과 차석교 구의원,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참 많이 연구도 하고 공무원들도 설득하며 오늘의 도로를 만들어냈고, 그 길이 무의해운 도선사가 운항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됩니다. 그 이후에 박상은 전 국회의원님의 뜻도 더해져서 지금의 무의대교가 탄생되었습니다.

 

이러한 업적 뒤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1976년 차석교 의원님의 부친이 복통이 생겼지만 저녁에는 육지로 나갈 수 없던 시절이라 다음날 동이 트고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이송하는 도중에 소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차 의원은 섬 주민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설움과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무의도가 육지가 되어야 하고 육지와 통하는 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차 의원님과 저를 비롯한 기초의회 일꾼들은 그 당시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일례로 중구의회 건축조례를 개정하여 당시 옹진군에 있던 미등기 건축물을 양성화시켜 전부 신규 건축물로 등재할 수 있도록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역 사랑의 뜻이 모여서 무의도가 지금의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관광객 북적이는 현재 무의도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섬 사랑의 씨앗을 뿌려왔던 차석교 의원님의 노력인 것입니다. 

무의 잠진도길, 소무의도 연육교, 무의대교 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당시 ‘삼형제’ 이세영 시의원(전 중구청장), 차석교 구의원(전 수협조합장), 김홍복 구의원(전 중구청장/농협조합장)이 심어놓은 씨앗이 오래도록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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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발전을 이끈 인천 중구의회 차석교 초대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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