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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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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복 전 인천 중구청장 / 본지 자문위원장
 
영종도에서 초대 민선 영종면장을 지내신 故조삼성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분의 손자인 ‘셀 세모세차장 영종국제도시점(전소)’ 조충현 사장을 만났습니다. 우리 고장의 일꾼이셨던 조삼성 초대 면장님의 삶을 통해 공무원과 지방자치의원, 그리고 주민들이 배울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조삼성님는 1910년 영종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주권을 빼앗긴 시국이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17세에 면사무소 촉탁직원으로 채용되었고, 독학으로 정식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면서기가 되셨습니다.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정세가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 면단위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시초입니다. 이 분은 주민들의 권유로 초대 민선 면의원 선거에 출마합니다. 특히 이북5도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일했기에 선거기간 동안 이북5도민들이 선두에 서서 열렬히 지지하고 선거운동까지 펼쳐 당선되었습니다.
지방자치의 근원이 현재는 시·군·구이지만 당시는 면 단위입니다. 면의회 의장이 면장이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행정력이 남달랐던 조삼성 면장님은 섬마을 시골길을 개설할 때도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주민들과 소통하고 동고동락하며 뜻을 모을 수 있었다고 후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이 평생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셨다는 흔적은 영종공설묘지 공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영종면의회 의장, 초대 민선면장, 영종농협장, 대한노인옹진군지부장, 영종중·고학교 유치, 북도면 전기·전화 유치’... 묘비에는 당신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생전의 고인을 아셨던 분들은 입을 모아 인품이 훌륭하고 주민과 잘 소통하면서 평생을 공익을 위해 헌신하신 지역의 표상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후배들이 선배의 인생을 아름답게 보고 뒤를 이어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삼성 면장님은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춰야 된다는 지론을 항상 가르쳤다고 합니다. 57년 동안 공직자로서 소임을 다하시고 퇴직할 당시 800만원의 빚을 지고 계셨다고 하니 재물을 탐하지 않은 청렴한 정신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빚을 둘째 아들 조규종씨가 인삼농사를 해서 몇 년에 걸쳐 갚았다고 합니다. 현대의 청년들이 이 분의 정신을 본받는다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인은 영종농협장도 역임하셨습니다. 영종농협은 리·통에 있던 조합을 합병하여 면단위 농협을 설립한 것입니다. 조삼성님은 조합장을 맡으면서 자비를 들여 농기계를 구입해 선진농법을 보급하는 등 조합원인 농민들의 소득 향상에도 앞장섰습니다.
지금의 인천 중구농협은 축복받은 농협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부 때 특별법에 의해 단위농협이 설립되었지만 소득 창출은 없고 재무구조가 열악하다보니 보리 수확 때 보리로, 벼농사 수확 후에는 벼로 출자를 받아 겨우 연명하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때의 현실을 현재 일하고 있는 농협 임직원들이 꼭 알았으면 합니다. 당시 농민조합원의 소득창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비를 쓰셨던 조합장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중구농협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조삼성 면장님은 지방자치 시절 뜻있는 분들과 함께 영종통운을 통해 영종호가 다닐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당시는 만석동에서 구읍뱃터로 하루에 4회 정도 운항하다가 훗날 월미도에서 구읍뱃터로 용주해운 도선이 운항하게 됩니다. 이런 뱃길이 지금의 인천대교와 영종대교 등이 생기게 된 단초가 되었으며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설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또 전기와 전화가 들어오지 않던 1980년 이전에는 초롱불을 밝히고 생활하였습니다. 당시 상공부장관에게 영종·용유·북도면 주민들의 뜻을 강하게 전달하여 한국전력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중등교육시설이 제대로 없던 시절에 지역의 지인들과 뜻을 모아 학교 설립을 유치하는데도 적극 앞장섰던 분입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손자 조충현 사장의 기억에 조삼성 할아버지는 늘 근엄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외출하면 주민들이 할아버지께 다가와 인사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 어린 나이였지만 주변 분들이 할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만들어지기까지 수 많은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쓰셨던 선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는 없지만 그 업적을 길이길이 기억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이것이 후배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선구자들이 남겨주신 이 아름다운 유산을 우리 모두 뜻을 모아 후손들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물려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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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지역의 표상... 터줏대감 조삼성 초대 민선 영종면장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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