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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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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60대 부부 이야기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행사가 필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 하다가도 부부사이에 자식이라는 에너지 솔루션이 생기면 또 다른 세상이 열니다. 이 보물 때문에 부부는 서로 느끼는 감정은 물론 이념도 통일된다는 것은 아주 신기한 일입니다. 어느 작가가 바보들의 소망상자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표현은 자식에 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아들을 군대 보낼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들이 군대 영장을 받고 입대를 며칠 남겨두었을 때 우리 가족은 추억을 만들어 보고자 무의도 호룡곡산으로 등산을 나섰습니다. 산을 올랐다가 거의 내려왔을 때 아들이 다리를 절뚝거렸고 증상은 한쪽 다리가 시큰 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그것은 의무라고 어렸을 때부터 주지시켰는데 설마 꾀병은 아니겠지 하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무릎 관절강에 물렁뼈 조각이 움직이다가 어느 부위에 가면 압박을 해서 그런 증세가 발생하는데 이런 상태라면 현역이 아니라 방위로 바꿀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학사일정에 맞춰 입대 기간을 정해놨는데 다시 검사를 받는 것도 그렇고 아들은 현역으로 군대를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의견도 아들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뭐 대수라고 아들의 다리가 저런데 군대를 지금 보내냐며 저는 극구 반대했지만 빨리 군대를 마치고 하던 공부를 빨리 끝내야 한다며 아들은 바로 입대를 결정 하더군요.

 

가슴이 한없이 무겁고 아팠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리를 절뚝거리며 배에 올라타고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아들은 가끔 한차례씩 증세가 있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고 염려하지 말라고 저를 다독이고 제 아빠와 함께 훈련소로 떠났고 당시 식당을 운영했기 때문에 저는 훈련소까지 함께 가지 못하고 멀리 뱃터에서 아들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나 훈련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이 훈련을 잘 받고 있고 마지막 훈련과정으로 야간 행군을 마치면 훈련이 끝나고 부대로 배치 받는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편은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뚝뚝한 남편이 걱정을 하는 것이 심각해 보여서 알아보니 40킬로쯤 되는 거리를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산을 넘고 하는 고된 훈련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는 행여나 다리도 성치 않은데 그 무거운 짐을 메고 훈련을 받다가 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2.4Kg으로 세상에 나와서 일년내내 감기를 달고 살고 클 때까지 갖은 병치레를 했던 아이를 생각하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새벽에 첫배를 타고 의정부 훈련소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훈련소 조교 만나 진단서를 보여주고 사정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부대 근처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부대앞으로 오라고 했고, 부랴부랴 과일 한박스를 사서 부대 앞으로 가 훈련조교를 만났습니다. 진단서를 보여주고 의사 소견을 몇 번이나 설명했습니다. 남편은 우리 아이 상태가 이러니 행군도중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다고 하면 짐이라도 차에 실어주는 도움만 주되 아프다는 호소가 없으면 그냥 걷게 놔두세요. 젊은 청년이 건강하면 덩어리를 짊어지고 뛰어간들 어떻겠냐만 사정이 그러니 부탁을 드리겠습니다그렇게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 돌아섰습니다.

 

조교가 인상도 좋고 착해 보이니 안심이 되지?남편은 그렇게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것도 청탁이라고 작은 봉투를 마련했습니다. 그때는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아 20만원을 넣기로 했는데 남편은 저도 모르게 용돈을 털어서 만든 비상금 50만원을 더 넣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25년 동안 월급 한푼 안쓰고 받는 대로 저에게 다 주었는데 그때도 느끼지 못했던 고마움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 때 남편에게 느꼈던 감사함과 든든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부대 훈련조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스스로 행군을 마쳤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장성한 아들 모두가 그 어미의 뜨거운 가슴에서 태어남이 새삼 느껴집니다. 이 힘이 바로 대한민국의 바탕이 되는 민초들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고위공직자 자녀의 군대생활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부정이 있었다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일이나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코로나19로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이 시기에 정쟁을 멈추고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항신도시에서 애독자 장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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