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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운 명품 인생

(주)명품·명품관 이용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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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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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1.jpg
(주)명품 . 명품관 이용군 회장

 

 

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운 명품 인생

 

- (주)명품·명품관 이용군 회장

 

돈이 많은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존경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부자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가 가진 현재의 부가 어떻게 축적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중요하고 그것을 어떤 나눔으로 실천하고 있는지가 존경받는 부자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열정과 성실이라는 자산으로 기업을 일구고 또 어려웠던 자신의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서 주위 사람을 진심으로 살피는 기업가가 있다. 고희에 가까운 나이에도 열정은 약관의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고, 유행을 모르면 창의력이 떨어진다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은 어느 기획자 못지않다. 매일 아침 세계평화의 숲과 백련산으로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하루를 설계하고 새로운 구상을 한다는 기업가 바로 (주)명품 이용군 회장이다. 

 

운서동 공항신도시 가운데에 위치한 (주)명품은 외국인 전용 사후면세점이고 2층의 명품관은 영종 최대 규모와 품격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명품 한식당이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닫히고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운서동을 비롯해 제주도와 김포공항 앞에서 운영중이던 세 곳의 사후면세점은 휴업 상태고 식당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용군 회장은 타고난 기업가고 승부사다.  


성실과 집념은 나의 자산


전라남도 나주가 고향인 이용군 회장은 1960년대 말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광주에서 유학생활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독서실에 청소를 하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청소하며 기거하던 학생들이 네 명이었지만 독서실 사장은 성실함이 남달랐던 이용군 회장에게 독서실을 맡기게 된다.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게 되자 탁구장을 열었다. 선수들이 쓰는 탁구용품을 갖춰놓은 최신식 탁구장은 광주에서 소문난 곳이 되었고 당시 이에리사 선수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탁구붐이 일자 최고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이용군 회장은 70년대 초반에 전라남도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고 한다.

 

군대를 제대한 이용군 회장은 더욱 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당시 무교동에서 규모가 큰 요식업을 하던 친척을 도와 일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사업 방식을 만들어갔다. 이회장의 타고난 성실성이 그 바탕에 있었다.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자리에 드는 부지런함 덕분에 1976년 종로에서 경양식집 문을 열고 또 스카이라운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80년대는 이태원으로 진출해 외식사업과 함께 그동안 꿈꿔왔던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외식업을 하면서도 유통에 관심이 많았던 이용군 회장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그 기회를 포착했다. 이제 많은 외국인들이 찾을 것이고 우리나라 제품이라면 무엇이라도 사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사후면세점은 인맥으로 얽힌 사업으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집안에 친인척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회장은 아무런 경험도 연고도 없는 면세쇼핑사업에 맨손으로 뛰어 든 것이다.    

국산 제품을 외국인들에게 판매하기위해 1989년 한남동에 후지쇼핑을 열게된 것이다.

늦은 밤까지 손님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일일이 주문한 물건을 배달해 주는 그의 성실성과 집념은 외국인 여행객들을 감동하게 했고, 반신반의 하던 여행사나 가이드들도 그의 편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에 제주도와 김포에 사후면세점을 더 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부지런하고 모범이 되어야 참모들이 받쳐주고 직원들이 따라 올 수 있습니다. 대표라고 지시만 하는 것이 바른 경영인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은 극복하고 한계는 뛰어넘는 것


인천공항이 개항하고 명품관은 운서동 공항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에는 거주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밤이면 썰렁해지는 도시였지만, 이곳의 새벽을 깨우고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곳이 명품관 건물이었다. 

 

국내 중소기업이 제조하는 공산품과 식료품 등으로 구성한 사후면세점은 이용군 회장과 직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일본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게 되었고 꾸준히 매출이 증가해 2010년 1천만불탑을 받게 되었다. 2011년에는 중소기업 발전 기여를 인정받아 중소기업청장 표창,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천광역시장 표창을 받았다. 2011년 9월에는 관광산업 진흥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납세의 의무 또한 성실하게 준수해 2013년에는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이 항상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일본과의 외교마찰로 관광객이 줄고 면세점이 개점휴업 상태가 되자 이 회장은 해외여행 붐이 일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눈을 돌렸다. 물론 쉽지 않은 몇 년의 과정이었지만 그동안에 여행사들과 쌓은 신뢰덕분에 일본의 빈자리를 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16년 사드문제로 중국과 외교 문제가 발생하고 중국 정부의 한한령 조치에 따라 관광객은 발길을 끊었다. 다시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 전략을 펼쳐 조금 안정화 되는가 싶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 되자 직원들도 명품관 식당마저 휴업을 하고 사태가 해결되면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만 이용군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문을 열고 있을수록 적자가 쌓이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공항신도시를 대표하는 식당이 문을 닫게 되면 지역 상권 전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와 시련은 극복하고 한계는 뛰어넘는다는 평소의 신념 때문이었다. 

 

사회적거리두기로 각종 회식이 없어진 상황에서 식사손님을 더 받아야 했기 때문에 비빔밥과 갈비탕이 전부였던 식사 메뉴를 양갈비정식, 굴비정식, 장어정식으로 고급화 시켰다. 위기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많은 곳을 답사하고 선호도를 조사해 만들어낸 이용군 회장의 명품 정식인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주어지는 결과는 없습니다. 정직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사업가의 기본 자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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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차힐 어린이집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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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아동센터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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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어르신 초청 식사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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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어린이 초청 식사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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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디차힐·장애인부모회 물품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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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정기 불우이웃 식사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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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뉴스 주최 새해 해맞이행사 떡국 대접

 

베풀면 더 커지는 행복

 

이용군 회장의 지역 사랑은 각별하다. 매일 아침 걷는 산책길에서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크고 작은 변화를 직접 관찰한다. 지역이 활성화 되고 상권이 살아나려면 명품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고 한다.

백운산에 올라 새해 첫해를 맞이한 주민이라면 명품관의 떡국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05년부터 15년 동안 인천공항뉴스와 지속해 온 해맞이 행사는 명품관의 떡국대접으로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보라매 아동센터나 디차힐을 후원하고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해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온 정성도 벌써 15년이 되었다. 이용군 회장은 지역의 어린이부터 장애인, 어르신들까지 초대해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하면 그들이 배부른 것 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예전처럼 식당으로 초청해 식사대접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독거어르신과 성당에서 후원하는 어려운 이웃 30여명에게는 따끈한 갈비탕을 만들어 매월 전달해 드리고 있다.

 

“부모님들께서 세상을 향한 큰 뜻, 다른 사람을 향한 큰 마음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남을 위한 배려는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코로나19가 극복되면 이 회장은 가장 먼저 어려운 이웃의 식사 대접을 생각하고 있다. 베풀면 더 커지는 행복을 이용군 회장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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