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파이영종, 비행하는 화가 김희태 작가의 ‘5 and me’ 개인전
- 책과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다양한 기법으로 ‘화폭’에 담는 자유로운 영혼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회화나 조각, 사진은 물론 영화 같은 영상 등 예술로 통칭되는 여러 분야에서 그것은 작품 이전에 예술가가 먹고사는 원초적인 본능을 해결해야 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유행의 흐름을 따르기도 하고, 흥행에 염두를 두고 모방을 하거나 아류를 쏟아내기도 한다.
독특한 화풍과 기법으로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화가가 있다. 그는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전업작가 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독특한 화풍으로 자기만의 그림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비행하는 작가’로 알려진 김희태 화가는 대한항공 객실사무장이 본업으로 30년 넘게 근무해 온 베테랑 승무원이다. 갤러리파이영종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를 만났다.
김희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어린왕자’ ‘삐애로’ ‘현의 노래’ ‘오빠생각’ ‘자작나무’를 이야기 시리즈로 완성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본격적으로 화가에 입문해서 그린 초기 작품 ‘자작나무’시리즈를 빼고는 그의 작품에는 사람이 화폭의 주인공으로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한 명의 작가가 그렸다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표현기법과 화풍, 주제들이 어우러져 있다.
“3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는 비행기를 타면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제 그림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릴적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과 소질이 남달랐던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미적 DNA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학창시절 미술에 관심은 많았지만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전업작가가 된다는 것이 춥고 배고픈 인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여건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도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다 보니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정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예술가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화폭에 담는다면 그것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그림으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본업을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공항이 셧다운 되면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조금씩 해왔던 그림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기간동안 미술계에 입문도하고 공모전에서도 여러번 수상을 하게 되어 개인전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어린시절을 잊지 못하는 어른에게
어릴적 만났던 ‘어린왕자’가 그의 캔버스에 옮겨져 있다. 김희태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작품을 음미하면서 하나하나의 장면을 연상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작의 어린왕자를 그대로 가져와 책이 주었던 감동은 그대로 담아냈다.
“생텍쥐페리는 이 책을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는 어른에게 바친다’고 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얻습니다. 어떤 철학책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지금도 자주 꺼내서 읽는 소중한 책이랍니다”
30여년을 직장생활을 한 중년이라고 보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어린왕자 감성을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린왕자 시리즈를 비롯해 그의 작품은 평면이 아니다. 작품마다 쌀알이나 지점토을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유화를 바르고 그것들을 정교하게 깎아내며 또 여러번 덧칠을 하고 같은 작업을 반복해 완성한 작품으로 입체감이 돋보인다.
- 음악이 주는 영감
그의 작품은 한 작품 한 작품 감상해도 좋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또 다른 감동이 온다. 지금까지의 작품과 또 앞으로 만들 작품은 ‘장난감 가게’가 그의 목차다.
평화롭던 시절 엄마와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한 소녀는 ‘삐에로’를 선택하게 되고 그 삐에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작가의 작품에 녹아져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을 당한 유태인의 참상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 작가는 그 테마음악을 들으면서 전율했고, 그 작품은 ‘삐에로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다.
늘 남에게 즐거움을 주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삐에로는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손과 발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지만, 또 다른 작품에서는 옷과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지우고 그를 위해 스스로 현악기를 연주한다. 우울하게만 보였던 삐에로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보이기도 한다.
가면을 벗은 수많은 얼굴은 삐에로가 가지고 는 수많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얼굴이고 또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 빛바랜 추억 ‘오빠생각’
박수근 화가의 투박한 그림 같아 보이기도 하는 ‘오빠 생각’ 시리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느 할머니가 어릴적 잘 놀아주었던 오빠의 기억을 희미하게 나마 꺼내어 삶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처리를 한 쌀알을 하나씩 붙여서 캔버스를 만드는 데에만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수천 번을 두드려서 색을 입혔고 그것을 깍고 다시 채색하기를 또 반복하면서 곡물의 따뜻함으로 수채화 같은 풍경을 완성했다. 어린 시절로 표현되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들이 다시금 따뜻하게 다가오기를 바랬던 작가의 마음이다.
“직관적으로 대상이 명확하게 보이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서 하려고 합니다. 스토리에 맞는 다양한 오브제와 기법을 동원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자유롭게 화폭에 옮겨볼 생각입니다”
1주일 예정이었던 김희태 작가의 전시회는 많은 관람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연장전시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오는 11월 1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서 어린왕자의 순수함, 삐에로의 애환, 수채화 같은 옛날 이야기, 나무 껍질을 붙여 놓은 듯 입체적인 자작나무 등 작가의 실험과 도전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의 노래
나는 현을 켭니다.
현은 손끝을 파고 듭니다.
활털이 스쳐 지나간
애잔한 현의 떨림을
몸통은
묵직한 울림으로 뱉어냅니다.
때로는 먹먹하게
때로는 낭랑하게
나는 현을 켤테니
당신은 신을 신어요.
활털이 현을 스치면
당신은 춤을 추어요.
울림이 허공에 퍼지면
당신은 날아가세요.
활털이 다하고
현이 끊기면
나도 당신께 날아갈테니...
김희태
김희태 개인전 ‘5 and me’
- 일 시 : 2024. 10. 18 ~ 11. 10 오후 1시 30시~18시 30분 (월,화 휴무)
- 장 소 : 갤러리파이 영종 (중구 큰말로 69 3층)
- 문 의 : 032-751-7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