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17(금)

‘예단포 어선의 만선과 예단포항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 제2회 예단포 풍어제 및 노을축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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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1.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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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포 어선의 만선과 예단포항 발전을 기원하는 제2회 예단포 풍어제 및 노을축제가 지난 15일 예단포항에서 열렸다.

 

예단포 어선의 만선과 예단포항 발전을 기원하는 제2회 예단포 풍어제 및 노을축제가 지난 15일 예단포항에서 열렸다. 

 

예단포어촌계와 예단포자율관리어업공동체가 주최하고 인천수산업협동조합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김정헌 중구청장과 강후공·김광호·한창한 구의원, 차형일 인천수협 조합장, 정선근 중구농협 조합장을 비롯해 어촌계 관계자와 예단포 인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풍어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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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포 풍어제에는 김정헌 중구청장과 강후공·김광호·한창한 구의원, 차형일 인천수협 조합장, 정선근 중구농협 조합장을 비롯해 어촌계 관계자와 예단포 인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풍어를 기원했다.

 

이번 행사를 후원한 인천수협 차형일 조합장은 “예단포 풍어제와 노을축제를 계기로 예단포 어민이 더욱 안전하게 조업하시고 만선하시기를 기원드린다”며 “지역의 어민들이 소통하고 단합하며 건강한 어촌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축사했다.  

 

송건하 운북어촌계장은 “여러분들의 배려와 응원이 어촌계에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어촌계의 단합과 예단포항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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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는 선착장을 비롯해 예단포항 곳곳을 누비며 액운을 물리치고 안전과 만선, 상가의 번창을 기원했다.


예단포풍어제와 노을축제는 예단포 어업인들의 해상안전과 풍요로운 어업활동을 기원하고 예단포항의 발전을 기원하는 행사로 한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인천수협의 후원으로 다시 시작됐다.

 

풍물패는 선착장을 비롯해 예단포항 곳곳을 누비며 액운을 물리치고 안전과 만선, 상가의 번창을 기원했고, 참석한 내빈들과 어촌계원들이 고사를 지내며 풍어를 기원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예단포가 고향인 어르신들이 찾아와 옛 기억을 되새기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예단포항 입구에 자비를 들여 비석과 장승을 세운 황대익 어르신은 “지금은 고향의 모습이 다 사라졌지만 이렇게 풍어제를 하면서 동네 분들을 만나고 옛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아주 좋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예단포항이 계속 번영해 가기를 기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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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서는 풍물놀이를 비롯해 북난타와 성악, 사교댄스와 비보잉 등 다양한 공연으로 예단포를 찾은 방문객들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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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포가 고향인 어르신들이 찾아와 옛 기억을 되새기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예단포항 입구에 자비를 들여 비석과 장승을 세운 황대익 어르신이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어촌계에서는 정성들인 음식을 마련해 방문한 내빈과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대접했으며 인천수협에서는 푸드트럭을 후원해 간식을 제공했다. 또한 풍물놀이를 비롯해 북난타와 성악, 사교댄스와 비보잉 등 다양한 공연으로 예단포를 찾은 방문객들을 즐겁게 했다. 


정겨운 포구와 아름다운 둘레길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예단포는 역사가 깊은 곳이다. ‘예단포’라는 지명은 ’임금에게 예단을 드리러 가는 포구‘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하자 고종 19년인 1232년에 무신정권 수장 최우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대몽항쟁을 시작한다. 천도 이후 몽골군에 의해 강화도가 봉쇄되었을 때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고려왕실에 이곳 예단포에서 물자와 병력을 공급하고 왕명을 외부에 지령함으로써 몽골군을 상대로 40여 년 간을 싸울 수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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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계에서는 정성들인 음식을 마련해 방문한 내빈과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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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협에서 푸드트럭을 후원해 참석자들과 예단포 방문객들에게 깜짝 간식을 제공했다.

 

예단포는 구한말 고종 때의 호구 기록에 의하면 가구수가 125호로 지금의 인구기준으로 약 4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획량이 번창하던 1930년대에는 가구수가 200호에 달했고 중선도 100여 척이었다고 전해진다. 일제시대에는 상당히 번성했던 마을로 경찰서 주재소가 있어 무의도와 용유도까지 관할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지역 출인 인사로는 이승만 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박정희 정부에서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1903~1979)씨가 있다. 

 

예단포는 미단시티 개발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아직도 예단포어촌계에는 35척의 어선과 107명의 어촌계원이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으며, 예단포항에는 24곳의 상가에서 싱싱한 활어회와 해물요리 등을 판매하며 영종주민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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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지역의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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