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성된 짠맛 - 오젓·육젓
물때에 맞춰 새벽에 조업을 나갔다가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에는 연분홍빛을 띈 애기 손가락 만한 새우가 한가득 실려있다. 바다는 5월부터 수온이 오르며 6월 바다는 조금씩 더 따뜻해진다. 바다에 비친 햇살은 연하고, 물빛은 투명하다. 그 따사로운 계절의 틈으로 바다에 새우들이 오르내린다. 젓새우는 젓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작고 여린 새우로, 잡자마자 소금을 섞어 절이고 시간 속에서 천천히 익힌다.
젓새우는 어획 시기에 따라 이름과 성격이 달라진다. 봄에는 풋젓, 춘젓, 5월의 오젓, 6월의 육젓, 9월과 10월의 추젓, 겨울철에 담는 동백하젓까지 또 초여름과 초가을에는 곤쟁이를 잡아 담는 자하(紫蝦)젓, 감동젓이 있다. 내륙에서는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도 전통적인 젓갈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많은 새우젓 중에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6월의 육젓이다.
젓새우는 오래전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귀한 ‘바다의 저장식품’으로 조선 시대부터 하(蝦), 당하(糖蝦), 진하(眞蝦), 백하(白蝦), 세하(細蝦), 자하(紫蝦) 등으로 불리며, 그 종류와 품질에 따라 명칭도 달라졌다.

16세기 초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세기 ‘여지도서’, 20세기 초 ‘한국수산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새우젓 어장은 평안도부터 남해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있었고, 특히 서해와 서남해 지역이 중심이었다. 영종도, 강화, 장봉도 바다에서 잡힌 젓새우는 배 위에서 바로 소금과 버무려 담갔으며, 그 맛은 왕실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세종실록에는 백하젓, 자하젓 등을 명나라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지금도 강화도에서는 젓갈이 유명하고 영종배들도 새우를 잡아 젓갈을 담그기도 하기도 하지만 여수나 목포로 내려가면 더 높은 값을 쳐주기 때문에 남도로 보내진다고 한다.
싱싱한 젓새우를 바로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면 새우의 단백질이 각종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감칠맛의 핵심 성분인 글루탐산이 생성되고, 동시에 유해 세균은 억제된다.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온도와 습도, 염도와 시간속에 숙성된 새우젓은 자연이 만든 천연 조미료다.
새우젓은 맛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깊은 가치를 가진 발효식품이다. 예로부터 ‘새우젓을 먹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세포 성장에 도움을 주는 타우린과 고단백질 성분이 풍부하다. 숙성 과정에서 생성된 글루탐산을 포함한 다양한 아미노산, 비타민 B1, 나이아신, 칼슘, 무기질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들이다.
특히 칼슘이 풍부하여 뼈 건강에 이롭고, 발효 과정에서 자연 발생한 유산균은 장 건강을 돕고 면역력을 높인다. 다만 나트륨 함량이 높기 때문에 섭취량 조절은 필수다. 새우젓을 사용할 땐 다른 염분 섭취는 줄이고 젓갈 본연의 깊은 맛으로 간을 대체하는 것이 건강한 방식이다.

짠맛에 머무르지 않는 진짜 새우젓의 맛
좋은 새우젓은 맑은 장국처럼 깊은 맛이 난다. 비린내가 없고 혀끝에서 감칠맛이 은근하게 감돌아 간이 부족할 때 한 숟갈 넣으며 짠맛보다는 풍미가 먼저 느껴진다. 6월에 담근 육젓은 김장을 담그기 위한 최고급 재료로 인정받고 있다. 감칠맛, 단맛, 깊이 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특히 발효가 잘 된 육젓은 단맛과 산미가 적절히 섞여 음식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새우젓 없는 김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김치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이 바로 새우젓이다. 그 짠맛은 단지 간을 맞추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새우젓에 포함된 아미노산과 미네랄은 젖산균의 발효를 도우며, 채소 하나하나의 맛을 감싼다.
삼겹살 또는 수육에 곁들이는 새우젓 역시 단순히 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새우젓 속 지방분해 효소가 고기의 기름기를 중화시키고, 짠맛 너머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번져 느끼함을 없애고 미각을 살린다. 짠맛의 감칠맛으로는 애호박 새우젓찌개가 있다. 뚝배기 바닥에 새우젓을 깔고 애호박, 양파, 대파, 고추를 큼직하게 썰어 올려 끓이고 채소가 부드럽게 익을 무렵 들기름 두 바퀴로 마무리하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밥도둑이 완성된다. 입맛 없을 때 말없이 한 그릇을 비우게 되는 맛이다.
보통 새우젓갈을 많이 먹지만 새우젓무침은 또 다른 맛을 낸다. 짠맛을 조금 덜어내기 위해 물에 살짝 짠기운을 빼고 물을 짠 다음 부추나 쪽파, 고춧가루 약간, 참기름 한 방울, 통깨 한 꼬집을 넣는다. 작은 새우젓 양념에 기름진 고기의 느끼함을 깔끔함으로 바꾸어 뜨끈한 흰 쌀밥 위에 새우젓무침을 얹으면 밥 한 공기가 금세 사라진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김치나 젓갈 무침을 넘어 파스타, 볶음밥, 샐러드 드레싱 등에 활용하는 퓨전 요리가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 역시 새우젓의 감칠맛에 매력을 느끼며, 다양한 방식으로 새우젓의 맛을 즐기고 있다.
작은 새우 한 마리가 품고 있는 바다의 짠맛과 깊은 감칠맛을 내는 새우젓은 젓갈을 넘어 한국인의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미료이자, 김치를 담글 때나 나물을 무칠 때, 찌개에 깊이를 더하는데 새우젓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 숟갈의 새우젓 속에는 바다와 시간,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작지만 깊은 음식의 비법은, 바로 새우의 미세한 감칠맛 속에 숨어 있다.

<새우젓 종류 >
- 풋젓(4월) : '데뜨기젓', '돗떼기젓'으로 불리며 김치, 국, 찌개, 보쌈, 족발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
- 곤쟁이젓(2-3월) : 숙성되면 밤색을 띠며, 새우젓 중 가장 작은 새우
- 오젓(5월): '오사리젓'의 준말, 살이 연하고 중간 크기, 나물 반찬용
- 육젓(6월): 산란기의 새우, 새우젓 중 가장 상등품, 김장용 젓갈로 가장 선호
- 차젓(7월): 크기가 작고 살이 연하며 음식의 양념으로 사용
- 자하젓(초가을) : 자하(紫蝦)로 담근 젓, 감칠맛이 좋으며. 육질이 부드러움
- 자젓(7-8월): ‘돗대기새우’ 를 주로사용, 크기가 작고 부드러운 육질
- 추젓(9~10월) : 껍질이 얇고 육질이 부드러워 다양한 요리 사용, 김장용
- 동젓(11월) : 붉은 빛을 띠며 잡어가 혼합되고 감칠맛이 강하며, 다양한 요리에 풍미를 더해 줌
- 동백하젓(1-3월): 한겨울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으로, 염도가 낮아 다른 새우젓보다 덜 짜고 담백하며 감칠맛이 뛰어나 김장, 국, 찌개, 나물, 반찬에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