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 세평숲에 자전거길 만들려고 소나무·참나무 수백 그루 잘라
- 주민 의견 수렴 부실 속 자전거길 공사 강행해 산림 훼손
“한 그루 한 그루 심으면서 20여 년을 가꾸어 왔는데 아무런 얘기도 없이 하루 아침에 수백 그루를 베어버리다니요. 어찌 이런일이 있습니까”
운서동 공항신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세계평화의숲(세평숲)이 자전거길 조성 공사로 대규모 훼손되면서 주민들의 반발과 탄식이 높아지고 있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자 도로 소음과 매연을 차단하는 완충녹지로 오랫동안 기능해 온 숲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파헤쳐져 인근 주민들과 20여 년간 숲을 가꿔 온 ‘세평숲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중구는 ‘300리 자전거 이음길’ 사업의 일환으로 미단시티에서 영종해안북로를 연결하는 자전거길 노선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공항입구분기점에서 삼목항을 잇는 안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고, 운서2교와 영종도서관 앞을 지나는 노선은 지난해 주민설명회에서 ‘도심 통과는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당시 운서동 주민자치회의 의견에 따라 제외됐다.
이에 중구는 롯데마트에서 삼목교차로까지 약 1.5km 구간을 세평숲 완충녹지를 활용해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수렴되지 않았고,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인근 지역 주민이나 세평숲 사람들과도 소통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주부터 해당 구간에서 벌목이 시작되면서 삼목교차로 인근에서 롯데마트 방향으로 약 750m, 폭 6m의 숲이 깊게 파헤쳐졌다. 30년 이상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 수백 그루가 잘려 나갔고, 완충녹지의 기능을 해온 숲길은 순식간에 산속에 임도가 생기듯 공사장으로 변했다.
지난 13일에서야 세평숲 훼손 현장을 확인한 주민들은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구청의 행태를 지적했다. 세평숲 사람들 역시 ‘정작 숲을 보호해 온 우리에게 아무런 설명도 협의도 없었고, 벌목 전 단 한 차례의 논의도 없었다’며 일부 회원들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4일 현장을 찾은 김정헌 중구청장은 상황을 직접 확인한 뒤 “잡목 일부만 제거하는 수준으로 보고 받았다”며 “실제 삼림 훼손이 너무 심각하다. 자전거도로 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훼손된 세평숲은 주민들과 함께 복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5년 전 공항신도시에 터를 잡은 박성진 그린스포월드 회장은 “기후 위기 시대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어야 하는데 오히려 수백 그루를 베어낸 현실이 참담하다”며 “정 필요했다면 숲을 파괴하는 대신 기존 도로 쪽으로 노선을 검토할 수도 있었는데 행정이 너무 쉽게만 해결하려 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은 주민 의견수렴 부족과 행정편의주의가 낳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완충녹지가 절차적 정당성 없이 훼손되면서, 중구의 공공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숲을 지키는 것이 주민과 행정의 공동 역할’이라며 ‘향후 다른 개발 과정에서는 투명한 정보 공유와 주민들과의 실질적인 의견 청취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