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3(금)

칼럼
Home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 위풍당당 자신만만
        위풍당당 자신만만 친구1. 친구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두 자식이 모두 현관에 나와 인사를 해야 신발 벗고 거실로 들어갔단다. 다만 샤워를 하는 사람은 예외였는데,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방에서 외출복을 벗지 않고 기다렸다가 인사를 받은 후 넥타이를 풀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꼰대 일짱’이라 불렀고 그 소문은 자식들 친구에게도 유명해져 집에 놀러 온 아들 친구들도 아버지께 먼저 인사를 하고 놀았다고 한다. 뼈대 있는 가문의 몇 대손으로서 가풍이란다. 자식들이 취직한 후에는 부모님께 봉급의 10%를 내놓도록 했다는 말에 같은 세대의 아버지로 살아온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가족 풍속도가 많이 바뀐 21세기에 이렇게 가부장적인(?) 삶이 그의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의아했다. 만약 눈치 빠르다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웠다면 강아지도 현관에 나와 인사를 했겠다 싶었다. 어느 날 만남에서 자식에게 받은 십일조로 점심을 산다 해서 맛있게 얻어먹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그가 요즈음은 자식들이 출근할 때 배웅을 해준다고 하니 큰 반전이다.  친구2. 노래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즐겨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노래는 음정과 박자가 영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음치다. 그의 18번 노래가 끝나면 친구들은 재미있어 박장대소하며 앙코르를 외치고, 그 친구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 노래를 선곡한다. 노래방을 끝낼 즘에 조용한 노래를 ‘손에 손잡고’ 합창을 했는데, 그 친구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그 친구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 본다. 일반적으로 음치는 자기가 음치라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본인이 부르는 노래가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자신 있게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남은 잘 알면서 가끔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노래가 끝나고 파할 무렵 한 친구가 그에게 ‘너 목청 엄청나게 크고 좋다. 그런데 혹시 너 노래를 부를 때 반주나 옆 사람 노랫소리를 듣냐?’라고 물으며, ‘합창할 때는 같이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 봐라’라고 했다. 노래는 잘 부르는 사람을 위한 것만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내 감정과 만족도 중요하지만, ‘함께 부르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라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합창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내 말만 들어달라고 목청 높이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옆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소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을까?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1-03

실시간 백운골에서 온 편지 기사

  • 21년의 마지막 달을 맞으며
    아름다웠던 백운산 단풍도 지고 이제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음이 실감난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뒤에는 어김없이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찾아온다.    12월을 맞아 또 한 해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나는 계절로 따지면 어디쯤 와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 백세 시대라지만 어느덧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으니 가을이라고 하면 될까? 겨울은 아직 아니겠지 우겨보고 싶다.  아침에 세수하며 매일 보는 내 얼굴은 오늘도 어제와 똑같아 보이지만, 이미 60여 년을 살아왔음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은 금방 알아차린다. 그것도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얼굴에 다 쓰여 있다니 잘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20대는 시간이 20km로, 50대는 50km 속도로 세월이 흘러간다고 한다. 앞으로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겠지만, 억지로라도 천천히 여유롭게 살고 싶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도 있지만, 하고 싶지 않아도 맡겨진 일을 하느라 또한 가고 싶지 않은 자리도 참석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며 지내는 시간을 더 늘려가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산책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없는 시간을 내어 걷다 보면 목표 거리를 채워야 하는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걷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털구름도 보이고 귀 기울여 들어보면 뱃고동 소리도 들린다. 천천히 걸을 때 나와 내 주변이 잘 보이고 들린다.    단체로 해외여행을 나가면 새벽부터 밤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많은 관광지를 방문한다. 한정된 기간 내에 너무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을 하고 돌아오게 된다. 최근 ‘라르고’라는 여행 상품이 출시되었다. ‘라르고’는 악보에서 아주 느리게 연주하라는 음악 용어라고 한다. 여행도 수박 겉핥기가 아닌 느리게 보고 음미하는 쪽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여론 기관인 퓨리서치가 2021년에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의 최고가치’를 조사했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고, 미국·영국·일본 등은 ‘가족’을 삶의 최고가치로 꼽았다고 한다. 이 조사를 통해 한국의 사회 현상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늘 12월 1일은 2021년의 마지막 달이며 12월의 첫날이기도 하다. 마치 한해의 만남을 12월에 다 소화해야 할 듯이 모임과 행사들로 분주해지는 연말이다. 따뜻한 사랑이 더 절실한 연말연시, 분주함보다는 ‘라르고’로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사) 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2-01
  • 나의 대중목욕탕 사랑
        나의 대중목욕탕 사랑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 가족 카톡 대화방도 손자가 태어난 이후로는 손자 사진과 글로 많이 채워진다. 하루하루의 성장 과정과 재롱을 보는 것이 그날그날이 평범한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카톡방 동영상을 보던 중 내가 우리 집 욕탕에다 물을 받아 놓고, 4살 손자 목욕시키는 동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다시 봐도 손자를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목욕시키는 내 모습에서 손자 사랑이 느껴져 감동이라고 아들과 며느리는 얘기한다.    나는 유년기를 온천이 있는 유성에서 자랐다. 집에서 목욕탕까지는 약 10분가량 걸렸지만, 우리 형제 4명은 큰형을 필두로 자주 온천탕에 다녔다. 추운 겨울에 목욕탕을 다녀오다 보면, 덜 말린 머리가 얼어붙기도 했지만, 뜨끈한 호떡 하나 사 먹으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내가 목욕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욕 후에 느끼는 개운함이다. 때를 밀지 말라고 하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충분히 담근 후 때를 밀어내노라면 내 마음에 끼어있던 때도 같이 없어지는 듯해서 참 좋았다.  나는 아들이 태어나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대중탕을 데리고 다녔고, 자식들이 장성해서 각자 생활하고 있는 지금도 우리 집에 찾아오면, 시간이 허락되면 같이 목욕탕에 간다.    같이 탕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앉아 그동안 못 나눴던 대화도 나누고 서로 등을 밀어주다 보면 그동안 야위었는지 살쪘는지 확인해볼 수도 있다. 피곤도 풀고 대화도 나눌 수 있어 일석이조다. 이것이 목욕탕을 즐겨 찾는 두 번째 이유다. 혼자는 혼자대로 동반자가 있으면 동반자가 있어 좋은 대중 사우나의 행복을 근 2년 코로나로 인해 박탈당하고 있다. 힘들지만 즐거운 또 다른 일은 봄가을로 베란다를 비롯해 집안 유리창 대청소를 하는 것이다. 유리창 청소를 하고 나면 창밖 풍경이 환히 잘 보이니 마음조차 깨끗해지는 것 같다. 물론 며칠 지나면 다시 더러워지지만, 그래도 청소를 하는 그 순간이라도 깨끗하니 하게 된다.    아무리 도수를 잘 맞춘 안경이라도 안경알이 더러우면 세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사물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안경을 깨끗이 닦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리라. 우리도 살다 보면 마음에도 때가 끼는데, 가끔은 마음의 때도 벗길 수 있다면 얼마나 개운할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성큼 겨울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 손자와 함께 3대가 함께 따뜻한 사우나에서 목욕도 하고 식혜도 먹으며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1-17
  • 위풍당당 자신만만
        위풍당당 자신만만 친구1. 친구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두 자식이 모두 현관에 나와 인사를 해야 신발 벗고 거실로 들어갔단다. 다만 샤워를 하는 사람은 예외였는데,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방에서 외출복을 벗지 않고 기다렸다가 인사를 받은 후 넥타이를 풀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꼰대 일짱’이라 불렀고 그 소문은 자식들 친구에게도 유명해져 집에 놀러 온 아들 친구들도 아버지께 먼저 인사를 하고 놀았다고 한다. 뼈대 있는 가문의 몇 대손으로서 가풍이란다. 자식들이 취직한 후에는 부모님께 봉급의 10%를 내놓도록 했다는 말에 같은 세대의 아버지로 살아온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가족 풍속도가 많이 바뀐 21세기에 이렇게 가부장적인(?) 삶이 그의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의아했다. 만약 눈치 빠르다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웠다면 강아지도 현관에 나와 인사를 했겠다 싶었다. 어느 날 만남에서 자식에게 받은 십일조로 점심을 산다 해서 맛있게 얻어먹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그가 요즈음은 자식들이 출근할 때 배웅을 해준다고 하니 큰 반전이다.  친구2. 노래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즐겨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노래는 음정과 박자가 영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음치다. 그의 18번 노래가 끝나면 친구들은 재미있어 박장대소하며 앙코르를 외치고, 그 친구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 노래를 선곡한다. 노래방을 끝낼 즘에 조용한 노래를 ‘손에 손잡고’ 합창을 했는데, 그 친구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그 친구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 본다. 일반적으로 음치는 자기가 음치라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본인이 부르는 노래가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자신 있게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남은 잘 알면서 가끔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노래가 끝나고 파할 무렵 한 친구가 그에게 ‘너 목청 엄청나게 크고 좋다. 그런데 혹시 너 노래를 부를 때 반주나 옆 사람 노랫소리를 듣냐?’라고 물으며, ‘합창할 때는 같이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 봐라’라고 했다. 노래는 잘 부르는 사람을 위한 것만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내 감정과 만족도 중요하지만, ‘함께 부르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라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합창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내 말만 들어달라고 목청 높이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옆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소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을까?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1-03
  • '오징어 게임' 단상
    요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온라인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며 몇 주 동안 시청율 1위를 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찾아서 보게 됐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이 드라마에 빠져들까 생각해 보았다.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465억 원이라는 일확천금의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야기다. 참여자들은 게임이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채, 이 게임이 모두에게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말에 환호하며 동참한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과연 모두에게 공정한 룰이라는 게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가져볼 만도 한데, 일확천금으로 인생을 역전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목숨을 거는 게임에 스스로 참여하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빈곤의 삶을 살며 겪는 좌절과 모순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드라마의 인기는 국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다. 나는 바르게 살아가느라 힘든데,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하는데도 떵떵거리며 잘사는 것 같은 상황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부유하다는 것은 삶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력이 개인의 성공 혹은 행복의 척도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고, 부자도 상대적이라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일확천금의 대박을 추구하는 삶의 반대되는 삶은 무엇일까?    우리는 하루하루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한 가지를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짬짜면이 생겼지만, 우리가 짜장면을 선택하면 짬뽕은 포기해야 한다. 드라마에서도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목숨과 맞바꾸는 게임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출구가 없어 보이는 절망감이나 막연한 불안감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이 드라마는 따뜻한 감동을 줬다.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서 희미한 등댓불이 뱃길에 안도감을 주듯, 우리 주변의 따뜻한 배려는 좌절하는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다른 해에 비해 올해는 날씨가 일찍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이웃의 어깨와 또한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위로하고 격려해 보자.  (주)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0-20
  • 코로나가 바꾼 추석 풍경
      백운골에서 온 편지 >     코로나가 바꾼 추석 풍경 작년 명절에 이어 올 추석 명절도 코로나19로 인해 고향에 가지 못하고 영종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 댁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큰형님 댁으로 형제들이 모였다.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이 일상화되고, 관광지 콘도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뉴스도 들었지만, 우리 형제는 몇 십 년을 똑같은 방식으로 명절을 보냈다.    막히는 도로 때문에 내려가고 올라오는 것만도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다음 해 명절에 철새가 계절에 따라 이동하듯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힘들어도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의무감에서일까, 아니면 힘든 것을 보상해주는 다른 즐거움이 있어서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이는 산업화 이후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사라지고 핵가족의 개   인주의 문화가 정착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대부분 며느리와 주부들이 음식 준비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최근에는 중간에 낀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심지어는 시부모까지 증후군을 겪는다는 보도를 접한다.  우리 민족에게 추석 명절은 떨어져 살던 가족들과 추수한 햇과일과 곡식으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미풍양속이라 여겼는데,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준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가정의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누군가 희생해주면 한 해에 두 번 있는 큰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의 거리두기는 우리 명절 문화의 변화를 가속 시키는 듯싶다. 올해도 코로나19 때문에 또한 정부 방침에 따라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 나섰다.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현수막이 TV 뉴스를 통해 연일 방송되었다. 명절만이라도 자손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이제는 부모들도 홀로서기에 적응해가야 할 듯하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코로나가 걱정은 되지만 명절 때 아니면 시부모님에게 애들을 보여주기도 힘들다”라면서 “시부모님이 ‘편할 대로 하라’고는 하셨지만, 막상 가지 않으면 적적해하실 것 같아 애들을 데리고 다녀왔다”라고 했다. 부모의 입장이라 그런지 그 며느리의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올 추석엔 5살 손자가 한복을 입고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복을 입으란다. 한복 갈아입기가 귀찮았지만 손자가 원하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송편을 먹으니 명절 기분이 더 났다. 힘이 들더라도 만나고 싶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대면 명절이 빨리 오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사) 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10-06
  • 백운골에서 온 편지> 편견으로부터의 탈출
        편견으로부터의 탈출 최근 들어 비가 내리지 않아 주말농장에서 농작물들에 물을 주는 날들이 많아졌다. 요즘 허리치료를 받다 보니 아내가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나는 다른 일을 한다. 그런데 옆에서 일하던 젊은 분이 아내에게 왜 혼자 힘들게 물을 주냐며 나 들으라는 듯이 화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편한 일을 하고 연약한 여자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것에 화가 난 듯했다. 며칠 뒤 물을 주기 위해 주말농장에 갔을 때는 지난번 같은 오해를 피하려고, 물뿌리개에 물을 반쯤만 받아 물을 주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른 분이 왜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넣지 않고 반만 담느냐고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분들이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남자인 내가 여자를 부려 먹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마디 하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많은 잘못된 편견과 고정 관념의 오류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책상을 벽에다 붙여 놓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항상 벽에다 붙여 놓고 살았다. 방안의 공간을 최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집을 방문했었는데 책상이 벽에 붙어 있지 않고 방 가운데에 있어 의아해서 물었더니, 벽에 붙여 놓으면 공간의 활용성은 클지 몰라도 책상에 그림자가 생겨 어둡게 느껴지는 등 단점이 많아서라 했다. 나도 집에 돌아와 책상의 위치를 바꾸고 나니 분위기도 새롭고 여러모로 한결 편리했다. 책상은 벽에 붙여 놓아야 한다는 것은 나의 근거 없는 고정 관념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마스크 착용이 흔하지 않았다. 가끔 강의실에 마스크 착용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검정 마스크를 쓰던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검정색 마스크를 쓰고 구석 자리에 앉은 학생은 불량(?) 학생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즈음 다양한 색상의 마스크가 개성으로 여겨지는 시대에서 보면 마스크는 흰색이어야 한다는 것도 나의 잘못된 고정 관념이었다.  ‘편견’은 사전적 의미로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의미하며, 상대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나에게는 신념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보면 잘못된 편견일 수 있다. 지나친 편견과 고정 관념은 나도 남도 모두 힘들게 만든다. 우리는 가끔 나의 잘못된 편견은 없는지 돌아보고,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특정 사고의 틀에 얽매여 힘들어하지 않는, 조금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8-25
  • 우리의 젊은 세대 화이팅!!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인 도쿄올림픽2020 경기가 1년 연기되고, 2021년에 무관중으로 개최되었다. 관중 없이 조용히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은 그동안 흘린 땀방울의 결과를 평가받을 수 있고, 집콕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큰 볼거리를 제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바뀐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야구경기를 보며 우리 선수들에게 뒷심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수영, 양궁, 펜싱, 높이뛰기, 야구, 배구 등 많은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이 초반에 지고 있어도 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경기를 잘 마무리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나는 그동안 역전패 당하는 것을 자주 보았고, 간혹 역전패당할 때마다 ‘우리는 역시 아직 안 돼’하고 우리를 비하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스포츠 경기에서 초반에 지고 있어도 후반에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볼 수 있었고, 설령 지더라고 승자를 축하해주고 이겼을 때 패자를 보듬어 주는 성숙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정신력만이 아니라 체격, 인물 및 표정까지 참가자 중 우리 선수들의 출중함이 눈에 띄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특히 나이 어린 선수들의 활약 많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서 희망적인 미래가 보였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 피땀 흘린 노력의 보상이 금메달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메달권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들이 보여준 노력과 당당함이 메달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 국민도 이제는 다 알기에 그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관전 태도도 성숙한 것이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은 생존이라는 명제 아래 자존감을 버리면서까지 나라 발전과 자식 교육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기성세대들의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 않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잘 성장했다 생각한다. 최근 노인 인구 증가, 생산 인구 감소, 빈부 격차 심화, 부채 증가 등에 코로나 위기까지 젊은 세대의 앞으로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많은 어려움을 잘 극복했던 저력이 있고, 우리의 젊은 세대가 문화예술 등의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기량을 나타내고 있음을 본다. 기대하지도 못한 종목에서 뜻밖의 선수가 훌륭한 결과를 내듯이,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    도쿄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화이팅!!!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8-11
  •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     며칠 전 산보 중에 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린 손자 3대가 즐겁게 소리치며 축구놀이 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얼마 전 부터 아주 평범한 걷고 뛴다는 일상이 나에게는 부럽게 된 것이다.  1년 전 허리통증과 저림으로 인해 진료를 받았는데, 퇴행성 척추관 협착증과 디스크 탈출이 심한 상태라고 했다. 의사는 치유를 장담하진 못하지만 상태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자세와 운동 등 환자 자신의 노력이 90% 이상 중요하고,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10% 정도라고 했다.    허리가 나빠진 이유는 잘못된 자세와 운동 부족으로 척추 주위 근육이 약해짐으로써 발생된 것이란다. 습관화된 나쁜 버릇을 바로잡는 것이나 근육을 강화시키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쉽게 치유되지 않았고 걷는다는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어려움이나 아픔에 기인하기도 한다. 어쩌면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도 육체적인 근육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모형제, 이웃, 학교 선후배 동창, 직장 동료 등 참 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냥 관계를 유지하기 조금 어려운 때도 있고, 떠올리기조차 싫은 사람과도 함께 살아가야 할 때도 있다. 용서 혹은 화해가 좋은 특효약이라 하지만 약이 잘 듣지 않을 경우도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특히 가장 큰 상처는 내 편이라 믿었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데,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깊어만 간다.   허리통증 초기에는 물리치료나 약물로 다스려보지만 차도가 없으면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올바른 자세와 운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재발한다고 한다. 결국은 나의 잘못된 습관을 찾아 잘 고쳐나가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버틸 수 있다.  인간관계도 같은 것이 아닐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기에 마음의 힘듦도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여 극복할 수밖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 혹은 남의 언행이나 가치관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주인인 나를 바르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도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어려움이 지나간 뒤 일상의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심신의 근육을 단련하는 기간으로 생각했으면 싶다. (사)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7-21
  • 너의 입장, 나의 처지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자신 중 한 명만 살아야 할 때,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생존하는 쪽을 선택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고 힘들게 경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귀찮고 힘든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    며칠 전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터널을 막 진입하니 앞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고 있었다. 지나다 보니 4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승용차의 망가진 정도로 보아 탑승객의 중상이 예상됐다. 그러나 나는 밀리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운전을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고 차량 탑승자가 얼마나 다쳤는지, 혹은 나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보다 나의 강의 시간에 차질이 생기지 않음을 다행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며칠 전 운남사거리에서 하늘도시 쪽으로 직진 차로에 신호대기를 하던 여자분이 기억났다. 그녀의 차 뒤에 다른 차가 몇 대 서있었고, 직진 신호가 들어와 사거리를 지나야 함에도 비상등을 켜 놓고 차에서 내린 후 본인 차 앞 건널목에 누워있는 커다란 개를 힘겹게 들어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있었다. 잠시 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지만, 위험에 처한 개를 구하기 위한 행동을 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난 것이다.    최근 성추행 사건이나 부모들의 어린이 학대 사건 등의 보도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워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또한 그 사건을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도 우리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공군 여중사의 죽음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실효적인 조처를 했다면 그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글을 읽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이지만 아직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누구는 무엇을 먹을까 메뉴 선택을 고민하고, 누구는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각각 다른 처지가 존재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각자 서로의 다른 처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조금씩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7-07
  • 토마토의 곁가지와 삶의 곁가지
    내가 가꾸는 주말농장에는 30여 명이 각자 농작물을 기르고 있는데, 상추 등 쌈 채소가 가장 인기 품종이다. 싱싱한 쌈과 삼겹살은 대한민국 최고의 선호 메뉴로 우리 부부도 평생 먹은 쌈 채소보다 올해 먹은 양이 더 많은 것 같다.  주말농장에는 한두 종류의 작물만 심는 이도 있고, 10가지도 넘는 작물을 가꾸는 이도 있는데, 통상 초보자는 욕심이 많아 다양한 품종을 심는다고 한다. 왕초보인 우리 부부도 다양한 작물을 누구보다도 많이 빽빽이 심었다. 좀 심했나 싶어 영농 선배님을 초대해 우리 농작물의  상태에 대해 점검을 부탁 드렸다.    고추 모종은 아랫부분의 순과 어린 고추들은 따주고, 토마토도 아랫부분에 있는 곁가지들을 제거했다. 옥수수도 부실한 것을 잘라 버리고 상태 좋은 한 두 개만 남기라 하셨다. 고추, 토마토의 곁가지와 옥수수를 잘라내는데 아까워서 가슴이 얼얼했다. 그러나 조그만 6평 땅에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욕심껏 심는다고 많은 소출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 비해 현재의 우리는 가진 게 참으로 많다. 물론 부족한 것보다는 편리할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도 삶이 그만큼 더 여유로워졌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 많은 가정에는 냉장고가 대형으로 바뀌고 거기다 김치냉장고까지 온갖 음식물로 꽉 차 있는데 어떤 음식물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최근 TV를 시청하다 보니 집 안을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집안이 마치 쓰레기를 쌓아 놓고 있는 듯 했다.   물건도 넘쳐나고, 많은 정보와 사람과의 인연도 넘쳐난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 멋진 사진과 글들이 SNS를 타고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다 살펴보기조차 힘들다.  전문가가 농작물의 곁가지를 쳐내니 가지와 잎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공간이 있어야 병충해도 덜하고, 원가지가 튼실하게 자라 열매도 잘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공간 확보를 위해 곁가지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연도 일도 늘리거나 유지하려 너무 애쓰지 말 일이다. 사람의 인연도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 오히려 건강한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듯싶다. 적당의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젯밤 비에 농작물들이 몰라보게 자랐겠지?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농작물에 인사하러 밭에 가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주말농장이라는 곁가지가 또 하나 늘어났네…. (사) 한국크루즈연구원 이사장 박승식        
    • 칼럼
    • 백운골에서 온 편지
    2021-06-23
비밀번호 :